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나요?
-부모에겐 너무나 무거운 말-
임신 8개월에 접어들던 나는 정기검진차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에 갔다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초음파를 보던 원장님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실력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훌륭한 이 분께서 괜히 하시는 말씀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한 채 조심스레 여쭸다.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나요?”
돌아온 원장님의 대답은 “아직 무슨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알 순 없습니다.
하지만 임신 7~8개월에 태아가 자라지 않는 건 어떤 문제가 있는 겁니다. “
나는 차마 믿을 수가 없어서
“태동도 여전한데요.”라 했지만, 이미 목소리는 잠기고 있었다.
내가 미적거리며 대학병원으로 바로 달려갈 기세를 보이지 않자 원장님은
“정밀검사를 받지 않은 상태로는 이 병원에서 출산할 수 없어요.”라고 하셨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그분이 써준 진료의뢰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남편은 아기에게 어떤 문제가 예상된다는 건지 재차 물었다.
나는 ‘그건 원장님도 모르며,
하여간 태아가 자라지 않는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대학병원에 다녀오지 않으면
지금 다니는 산부인과에서 출산할 수 없으니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 말했다.
다음날 대학병원에 접수를 했고, 2주 후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다.
기다리는 2주 동안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지은 모든 잘못, 죄를 떠올리며 참회했다.
하루하루 편히 잠들지 못했다. 자다 깨어 남편 몰래 흐느낀 날도 여러 날이었다.
임신 7~8개월에 잘 자라지 않는 태아들 중에는 장애나 기형을 갖는 아이들이 종종 있기에,
우리 아기가 심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는 떨칠 수 없었다.
남편은 ‘별 문제없을 거야’라면서도
‘장애가 있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낳아 기르자.’했다.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부모에게는 다 업이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부모가 꼭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장애가 없다고 해서 부모가 꼭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며 나를 다독였다.
남편의 그 말을 듣자
나는 뱃속 깊은데서부터 올라오는 용기가 생겼다.
어떤 경우에도 이 아이를 낳아서 최선을 다해 기르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럼에도 정밀검사 예약일 아침
나는 전날부터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치가 있는 검사실 몇 곳을 거치면서
나는 부인과 교과서에서나 본 듯한 심각한 임산부와 아기들을 봤다.
검사실을 뺑뺑 도는 동안 아무도 내게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아침 일찍 시작된 검사일과는
점심 먹고 오후가 되고서도 한참 지나서 끝났다.
다시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산부인과 간호사가 검사결과지가 든 봉투를 주면서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 원장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나는 검사 결과가 몹시 궁금했다.
797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봉투를 슬며시 뜯어 검사 결과를 보았다.
지금도 기억한다.
거기엔 ‘unknown’ 이란 단어만 달랑 하나 씌어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결과지였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단어였다.
남편은 그 단어를 보더니 아이는 괜찮을 거라며 웃었다.
나는 다음날 산부인과를 방문해서 검사 결과가 든 봉투를 전해드렸다.
산부인과 원장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일단 낳고 봐야겠네.”라 하셨다.
괜찮다는 게 아니었다!
며칠 후 진주에 사는 친구 어머니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oo아, 산달이 다가오네. 초산이라 좀 힘들 거야.
진통하면서 너무너무 힘들면 그냥 제왕절개로 낳아라. 그래도 괜찮다. “고 하셨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진주에서 제일 큰 산부인과 병원의 원장님이셨다.
나는 자연 분만할 각오였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출산의 수많은 변수들에 겁이 났다.
심지어 우리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니...
그러다가 이 분의 말씀을 들으니까 큰 위로가 되었다.
첫아이를 낳던 날,
새벽 1시를 조금 지난 시각에 시작된 진통은
저녁 9시 37분 큰애가 태어날 때까지 거의 2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나는 아주 지치고 아팠지만,
까맣게 자란 머리카락을 가진 우리 아이의 눈코입귀, 손가락 발가락 발뒤꿈치까지
다 정상적인 걸 내 눈으로 하나하나 다 확인했다.
그리하고 나니 안도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30년 전 그렇게 나는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나요?’라는 말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