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의 사전적 의미는 병명을 판정하는 일이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합한 처치를 하기 위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나는 첫 진단을 내게서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핸디캡을 가진 장애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개는 이미 유명한 대학병원들을 거쳐 오기 때문에 내가 첫 진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 어쩔 수 없이 첫 진단을 내가 내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부모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도
부모로선 차마 믿을 수 없고, 믿기 싫고, 안 들으니만 못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A 아동의 부모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이었다.
아이의 양육은 주로 가사도우미와 할머니께서 도움을 주셨다.
우리 한의원에 온 이유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늦고, 숫자 계산이 잘 안 되어서였다.
초등학교 입학이 머지않다 보니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우리 한의원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얼굴을 보고 바로 진단할 수 있었다.
아동의 현재 병력, 과거력, 가족력, 발달과정에 대한 검토, 진맥, 관찰,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통해 내가 마음속으로 내린 진단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 아동의 부모는 아동의 병명을 그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진료를 마칠 무렵 그 부모에게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센터에 다녀오도록 진료의뢰서를 써 드렸다.
부모는 당황하며 왜 거길 다녀와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제가 추정하는 병명이 있는데, 그 진단이 맞는지는 그곳에 가셔야 확인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부모는 거길 꼭 가야 하느냐고 되물었고,
나는 다녀오시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다음에 오기로 한 날에 예약 펑크가 났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상처를 입고 오지 않으시는 게 틀림없었다.
내게서 첫 진단을 받거나
이런 이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게 되거나
혹은 우리 한의원에서 심리평가를 받은 아동의 부모들이 대체로 그랬다.
두세 달 후 A 아동의 부모가 다시 찾아왔다.
나는 굳이 유전자 검사 결과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이 아동의 치료와 교육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마침내 아동의 어머니가 진료를 마칠 무렵 스스로 말을 꺼냈다.
“원장님이 추천하신 그 교수님께 갔는데,
검사를 하기도 전에 모(謀) 증후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검사 결과도 마찬가지였고요.
저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모르고 살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
어쩐지 나를 원망하며 우시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임신 7-8개월 무렵에 겪은 일이 뼈에 새겨져 있어서
이들이 느꼈을 암흑천지와 좌절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괴롭고 힘드셨을 텐데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신 게 대단한 겁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B아동의 부모는 달랐다. B아동의 부모는 지방에 사는 부부교사였다.
나는 그 아동을 진찰한 후 진단을 내렸다.
진료 말미에 아동의 부모에게 유전자 검사를 추천했고, 진료의뢰서를 써드리겠다고 했다.
B아동의 부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우리 애가 태어나 지금까지 6년 동안 여러 번 아팠고
동네 소아과부터 대학병원까지 입원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 어느 선생님도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지 않았는데요.
유전자 문제가 있었으면 그분들이 말을 안 했을 리가 없잖아요!”라 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드문 질환이라 교과서에만 보고, 실제로는 그분들도 경험이 없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때는 폐렴으로 입원했으니까 그 질환에만 집중했겠지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 관련된 정보들을 참고할 수 있으니
아이 키울 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라고 차분히 말씀드렸다.
부모는 내게 어떤 질환으로 생각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고,
나는 모(謀) 증후군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예상대로 다음 예약일에 펑크가 났다.
그런데 B아동의 부모는
다른 사람들이 아이의 핸디캡을 알아차리면 어쩌나 몹시 꺼리는지라
그 가정의 위기가 자못 걱정스러웠다.
자녀에게 문제가 있을 때
어떤 부부는 협력하고, 또 어떤 부부는 서로 비난한다.
그래서 썩 내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동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원장님, 검사했습니다.
아이가 이렇다는데 저희가 뭘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는 말속에 많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B아동의 어머니에게
마음이 추슬러지면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발달을 돕는 치료와 교육을 지속하라고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A 아동의 진료는 그 후로 몇 년간 지속되었다.
사춘기 시절에도 이따금 감정과 행동이 격해지는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치료를 했다.
어느새 그 소녀는 숙녀가 되었다. 전문대에 다니고 있으며, 남자 친구도 있다.
나의 은퇴 문자를 받고 이 가족이 부랴부랴 찾아왔다.
그들의 아름답고 따뜻한 얼굴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