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드레스 코드

by 뚜와소나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이번에도 시댁 가족들을 다 초청하여 우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르바이트해야 되는 대학생 조카 세 명을 제외하고

총 13명이 모여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일단 드레스 코드를 'RED'로 정해 문자를 돌렸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빨간색으로 된 뭔가를 하나씩 입거나 두르고 나타나야 된다.

넥타이든 스카프든 티든 바지든 그 무엇이든, 눈에 띄는 빨간색 하나는 있어야 한다.

나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쓸만한 빨간색 가면을 쓰기로 했다.

동생이 동대문에서 사다준 게 있었는데, 드디어 백만 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남편은 피에로의 뽀글이 모자를 쓰기로 했다.

벗으면 이마에 고무밴드가 두 줄 걸쳐질 것이므로 땀이 나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다.

작은애는 빨간색으로 된 게 양말밖에 없어서

아침부터 바지색에 어울리지 않는 빨강 양말을 신기로 했다.

큰애는 실내에서 빨간색 털모자를 쓰고 있겠단다. 사우나 체험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내가 문자를 발송하자마자 시누 남편에게서 바로 회신이 왔다.

'빨강 팬티도 되나요?'라고.

나는 의연히 대처했다.

'증명 가능하다면 ok.'라고 회신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바지 위에 빨강 팬티를 입겠다.’는 문자가 왔다.

즉시 '환영합니다. '라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슈퍼맨 복장이 아닌가!

50대 중반의 배불뚝이에 새다리 남자가 슈퍼맨 복장을? 노답이다. 크크.

하여간 이 못 말릴 장난꾸러기 고위직 나으리께서

무슨 복장을 하고 나타날지

두려움과 설렘으로 나는 주말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어떤 일본 사람의 책에 보니

'옳다고 생각되는 일보다

재밌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라.'길래 꾸며본 일인데,

부디 근엄하신 시숙 내외가 잘 적응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후기) 고위직 나으리께서는 백화점에 가서 주홍색 셔츠를 사 입고 나타났다.

추가로 나는 그의 머리에 붉은 악마들이 쓸만한 삼각뿔 달린 머리띠를 씌웠다.

근엄하신 시숙 내외는 버건디에 가까운 머플러를 하고 등장했는데,

노력한 흔적이 역력해서 우리들이 다 색맹인 척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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