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기(穀氣)가 끊어지면 Ⅰ
-큰 이모의 소천-
4년 전 어느 날 외사촌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언니는 내게 “큰 이모를 집으로 모셨어. 며칠 내로 돌아가신다는데, 다녀가겠니?”라 물었다.
나는 “네, 내일 바로 찾아뵐게요.”라 답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큰 이모는 막내언니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거기서 평안히 소천하시도록 하자고 형제들끼리 상의가 됐다고 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외국에 살고 있는 큰오빠와 둘째 언니의 입김이 컸으리라.
다음날 막내언니네 아파트에 도착해서 보니 외사촌 다섯명과 그들의 가족이 와 있었다.
유럽에서, 경남에서 서울로 다 모인 것이다.
각자 직장에 휴가를 내고, 돌아가는 항공편을 예약하고 왔다고 했다.
나는 사촌언니오빠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큰 이모가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얇은 오렌지색 커튼이 쳐진 방 가운데에 햇살을 받으며
가정용 병원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고 있는 큰 이모가 보였다. 약하게 숨을 쉬고 계셨다.
둘째 언니는 내게 “다 들으시니까 귀 가까이에서 말하렴.”하고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큰 이모의 손을 잡고 왼쪽 편에 바짝 다가 앉아서 추억을 회상하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사촌언니오빠들은 큰 이모가 계신 방으로 한 번씩 번갈아 들어가선
잔잔한 대화같은 독백을 하고 나왔다.
그중 큰오빠가 가장 긴 시간 큰 이모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고,
때로는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오빠의 두 눈이 종종 촉촉했다.
맏이여서일까? 아니면 젊은 날 방황하며 큰 이모 속을 잠시 썩였던지라 그랬을까?
나는 언니오빠들이 큰 이모의 죽음을 놀랍도록 평온하게 준비하고 있는 걸 느꼈다.
막내언니가 차려준 간식을 먹고나서
내가 거실 소파에 앉자 둘째 언니가 조용히 물었다.
“네가 보기엔 큰 이모가 언제 소천하시겠니?”
둘째 언니는 외과의사다. 나보다 더 잘 아실 처진데 왜 내게 묻는 걸까?
막내언니는 큰 이모께서 곡기를 끊고 주사기를 뺀 지 일주일이 더 지났다고 첨언했다.
교과서대로라면 돌아가실 때가 된 셈이었다.
나는 제대로 대답해드리기 위해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맥을 하고 나왔다.
“아직 아니네요. 앞으로 3,4일은 더 버티실 것 같아요.”
돌아갈 항공편의 날짜를 헤아리던 둘째 언니는
내 말에 안도의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3일 하고 반나절이 지나서
마침내 큰 이모는 자녀들이 함께 있는 곳에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곡기는 물론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은 지 열 하루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큰오빠와 둘째 언니는 장례를 잘 치르고 각자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