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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졸업식-
by
뚜와소나무
Dec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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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며 선영이가 꽃다발을 하나 내밀었다.
나는 받기를 주저했다.
“
받아”라며 선영이는 기어이 내 손에 쥐어줬다.
그리곤 ‘우리 둘이 사진도 찍자’
했다.
그때 엉겁결에 찍힌 사진이 내 유일한 졸업식 사진이 되었다.
우리 가족 누구도 나의 여고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니
꽃다발을 내게 줄 이가 누가 있었겠는가?
내 처지가 딱해 보였던지
선영이는 자신이 받은 꽃다발 중 하나를 얼른 내게 건넸다.
학력고사 3교시,
나는 곤히 잠들었고
3년 간의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
다.
내가 원하는 대학, 학과에 원서를 넣을 수 없었다.
서울대로 진학하지 않은 것은
면허증이 걸린 학과가 서울대 간판보다 더 우선이라 그랬고,
경상대 의대로 진학하지 않은 것은
그냥
진주를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요즘은 재수를 필수라 할 정도지만
그 시절엔
재수도 녹록지 않았다.
우리집엔 위로는 재수한 언니, 아래로는 고등학생과 중학생들인 동생 셋이 더 있었다.
부모님은
내게 '형편상 재수를 시켜줄 수 없으니 점수에 맞춰 아무 데나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의대가서 전문의과정 밟는 동안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지원해줄 뜻도 없다'하셨다.
정신이 황폐해진 나는
지원서 쓰는 날 처음 들어본 학교, 학과 이름을 써냈다. 겉으론 괜찮은 척 하면서...
여고졸업식은 나의 실패를 한번 더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싶었다.
가족 중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의 씁쓸함만은 기억한다
.
바로 위 언니가 여고를 졸업했을 때는
금 10돈인지 20돈인지로 목걸이를 맞춰 담임선생님께 선물까지 한 부모님이셨는데,
내겐 왜?
실망이 워낙 크셔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딸들은 둘 다 고3을 거쳐
바로
재수생이 되었다.
나는 그들의
고교
졸업식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꽃바구니를 맞춰서 안겼다.
딸들의 친한 친구 몇 명에게도 같은 곳에서 맞춘 꽃다발을 선물했다.
대학을 진학했건 못했건 간에 그들의 3년간 노고를 위로하고 졸업을 축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
다.
선영이는 진주에서
, 나는 수도권에서
30년 넘게 살면서도 우리는 매년 만났다.
선영이는
내년에
연구원에서
학교로 도로
돌아갈 것이라
했다.
나는 이제
그녀의
직장졸업식을 기다린다.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그녀에게
달려갈
것이다.
기념사진도 여러 장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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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풀 뽑고 야채 기르며 사는 전직 한의사입니다. 오래전부터 진료실 이야기와 가족의 일상을 간간히 기록해왔었는데, 이제 그 얘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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