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졸업식-

by 뚜와소나무



“이거” 하며 선영이가 꽃다발을 하나 내밀었다.

나는 받기를 주저했다.

받아”라며 선영이는 기어이 내 손에 쥐어줬다.

그리곤 ‘우리 둘이 사진도 찍자’ 했다.

그때 엉겁결에 찍힌 사진이 내 유일한 졸업식 사진이 되었다.


우리 가족 누구도 나의 여고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니 꽃다발을 내게 줄 이가 누가 있었겠는가?

내 처지가 딱해 보였던지

선영이는 자신이 받은 꽃다발 중 하나를 얼른 내게 건넸다.

학력고사 3교시, 나는 곤히 잠들었고

3년 간의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학, 학과에 원서를 넣을 수 없었다.


서울대로 진학하지 않은 것은

면허증이 걸린 학과가 서울대 간판보다 더 우선이라 그랬고,

경상대 의대로 진학하지 않은 것은

그냥 진주를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요즘은 재수를 필수라 할 정도지만

그 시절엔 재수도 녹록지 않았다.

우리집엔 위로는 재수한 언니, 아래로는 고등학생과 중학생들인 동생 셋이 더 있었다.

부모님은 내게 '형편상 재수를 시켜줄 수 없으니 점수에 맞춰 아무 데나 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의대가서 전문의과정 밟는 동안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지원해줄 뜻도 없다'하셨다.


정신이 황폐해진 나는

지원서 쓰는 날 처음 들어본 학교, 학과 이름을 써냈다. 겉으론 괜찮은 척 하면서...


여고졸업식은 나의 실패를 한번 더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싶었다.

가족 중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의 씁쓸함만은 기억한다.

바로 위 언니가 여고를 졸업했을 때는

금 10돈인지 20돈인지로 목걸이를 맞춰 담임선생님께 선물까지 한 부모님이셨는데,

내겐 왜?

실망이 워낙 크셔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딸들은 둘 다 고3을 거쳐 바로 재수생이 되었다.

나는 그들의 고교졸업식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꽃바구니를 맞춰서 안겼다.

딸들의 친한 친구 몇 명에게도 같은 곳에서 맞춘 꽃다발을 선물했다.

대학을 진학했건 못했건 간에 그들의 3년간 노고를 위로하고 졸업을 축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이는 진주에서 , 나는 수도권에서

30년 넘게 살면서도 우리는 매년 만났다.

선영이는 내년에 연구원에서 학교로 도로 돌아갈 것이라 했다.

나는 이제 그녀의 직장졸업식을 기다린다.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그녀에게 달려갈 것이다.

기념사진도 여러 장 찍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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