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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Dec 27. 2022

나와 아버지 Ⅲ

- 신문에서 제일 먼저 어디를 봐야 하나?-

    

초등학교 5, 6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형제들은 청색 줄무늬 소파에 모여 앉아 아버지의 일장훈시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신문에서 제일 먼저 어디를 봐야 되는지 한 명씩 말해봐라.”고 하셨다.

     

당시만 해도 신문은 으레 어른들이 보는 것이었다.

신문이 배달되면 우린 늘 할아버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이던 우리들이 신문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신문에 나온 중요한 글자들은 죄다 한문으로 씌어 있었고,

조사나 형용사 부사 같은 것들만 한글로 씌어 있었다.

우리 형제들이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배우긴 했지만,

신문에 나온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다는 건 택도 없는 일이었다.

      

말을 해보라고 하니 우리들은 각자의 생각을 말했다.

누구는 네 컷짜리 만평을 제일 먼저 봐야 한다고 해서 다 같이 웃었고,

누구는 그날 TV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는 면을 제일 먼저 봐야 한다고 했고,

또 누구는 첫 페이지에 나오는 정치면을 제일 먼저 야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날짜를 제일 먼저 봐야 해요.”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이 대답할 때는 웃으며 ‘아니지’‘라고 넘어가시고서는

내가 날짜를 봐야 한다고 하자 표정이 확 변해서는

마치 ‘저 멍청이가 오늘도 말귀를 제대로 못 알아듣고 저런 대답을 하는구나.’하듯 혀를 차셨다.   


그리고는 바로 “경제면을 봐야 해!”라고 하셨다.

정치도 경제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라는 것이라면서 경제면을 중요하게 보라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고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경제에 대한 관심이 도통 없다.

우리 집 둘째 아이를 보니 무슨 트라우마가 있어서가 아니라 유전자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 같다.

회계학에 대한 강의를 6개월 동안 받았고, 재무제표에 대한 책을 몇 권씩 반복해서 읽었으며

소위 베스트셀러로 추천되는 금융 관련 도서도 십 수권은 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에 대해 관심이나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왼쪽 귀로 들어와 오른쪽 귀로 빠져나간다.


나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금융맹이고 싶진 않았다.

무지해서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는 엄마가 되지않기 위해 

최소한의 금융지식은 갖추고 싶었다.

그래서 내심 싫어도 꾸역꾸역 경제 관련 공부를 했다.

물론 그 후로 알아듣는 건 조금 늘었다.

경제면에 오르내리는 용어도 좀 익숙해졌고, 화폐나 금융의 역사도 좀 알고,

대한민국 초등학교 의무교육에 금융과목을 넣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경제지를 따로 구독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문의 경제면을 매일 아침 읽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미가 없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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