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와소나무 Dec 27. 2022

나와 아버지 Ⅳ

- 신뢰가 우선인가? 사랑이 우선인가?-

    

아버지는 사윗감으로서 내 남편을 환영하지 않았다.

'외모로 보나 학력으로 보나 집안으로 보나 도통 볼 것이 없다'며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런 아버지께 나는

 “지난 3년간 지켜보니 신뢰할 만한 사람입디다. 그래서 결혼할랍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버럭 화를 내셨다.

“니 지금 제정신이가? 사랑해서 죽니사니 했다가도 이혼하는 마당에 뭐? 

신뢰하니까 결혼을 하겠다고? 사랑해서도 아니고 신뢰해서라고? “하시며

특유의 비웃는 표정을 짓고 눈으로 나를 한참 힐난했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내게 보낸 편지에다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첫째’로 시작하여 넷째 사유까지 몇 장에 걸쳐 자세히 적어 보내셨다.

나는 답장 대신 한 문장으로 내 뜻을 당돌히 말씀드렸다.

“친정아버지로서 염려하시는 뜻은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그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결혼식 대신 약혼식을 하는 것으로 파혼의 여지를 남기고자 했다.

“언제라도 파혼할 마음이 들면 말만 해라.”라고 하며 벼르셨다.

그리고는 지인의 딸이 의사(사위)와 이혼한 이야기 등을 아무렇게나 하셨다.

소위 친정아버지가 뒤에 있으니 부당한 일이 있으면 참지 말아라는 것과는 한참 결이 달랐다.

'너의 판단에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경고 같은 것이었다.

    

비록 팽팽하게 대립하였다 해도 나나 아버지나 큰 소란을 일으키진 않았다.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내 편에 서서 응원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냥 찻잔 속의 회오리 같았다.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자 사윗감에 대한 실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시던 처음과 달리

그냥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내 남편을 진국이라고 추켜 세웠다. 

     

지난 30년간 남편과 나는 다정하고 재밌게 잘 살아왔다.

신뢰란 부부 사이에 상당히 중요한 기초이지만,

결혼할 무렵 왜 내가 ‘신뢰’에 대해 그렇게 민감했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바람피운 아버지로 인해 풍비박산 날 뻔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몫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 아버지 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