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와소나무 Dec 27. 2022

나와 아버지 Ⅴ

- 시골길을 걷는 아주머니-


예과 2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지름길로 집에 가려고 시골의 어느 한적한 기차역에서 내려 

마중 나오신 아버지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과 마주치기 싫어서 시시한 창 밖 풍경을 보고 있었다.

15분 즈음 가다가 시골 도로변을 걷고 있는 초로의 여인을 발견했다.

겨울이라 오후 4시 무렵인데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분을 태워야겠다.”고 혼잣말을 하셨다.

그리곤 서서히 속도를 줄여 아주머니 옆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타세요.”했다.

아주머니는 고마워하며 탔다.     

아버지는 “제가 젊었을 때 ‘지나가는 차가 나 좀 태워주모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라 말했다.

그리고는 행선지를 물어보셨다.

아주머니는 “감사합니다. 부산 가는 버스를 타야 되니까 터미널에 내려 주이소.”라 했다.

      

조금 더 가다가 아버지는 

“무슨 일로 버스도 잘 안 오는 그 길을 걷고 있었능교?”물었고,

아주머니는 “제가 꼭 보답해야 할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30년 만에 찾아갔는데,

그분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무도 몰라서 그냥 돌아가던 참이었습니더.”라 대답했다.

이어 

“ 제가 30년 전에 우리 아들 낳느라 죽을 뻔했거든요. 

동네 할머니들 몇 명이 왔는데도 애가 나올 기미가 안보이고 저도 죽고 아(兒)도 죽는다캤어예. 

그런데 그때 어떤 총각선생님이 밤중에 오셔갖고 우리 아들도 살고 저도 살았다 아입니꺼.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이제 살만해서 보답할라꼬 왔더니만 

동네 사람도 다 바뀌삐맀고, A선생님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라면서 아쉬워했다.


아버지는 그 얘길 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백미러로 몇 번이나 보셨다.

그리고 운전하는 내내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순식간에 파악이 됐다.

그때 그 젊은 총각선생님이 누구였는지...

아주머니께서 말하는 그 동네의 A선생님은 우리 아버지뿐이었다.

1960년대 의사면허증은 고사하고 한지약사 자격만 겨우 갖췄던 아버지는

어느 날 옆동네 젊은 아낙이 난산으로 다 죽게 됐다는 말을 할머니에게서 듣고

급히 달려가서 위생병 하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출산을 도왔다. 하늘이 도운 것이겠지만 말이다.     

죽을지 살지 모르는 상태의 산모는 우리 아버지를 의사로 착각하고 살아오신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를 터미널에 내려줄 때까지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하셨다.

‘어디서 잘 살고 있을 테니까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건강히 잘 사시라’는 인사를 건네고는 

핸들을 꺾어 집으로 향했다.     

나는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었지만 표정은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보다 조금 풀렸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 아버지 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