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겁이 아주 많고 온순한 성격이다.
그런 우리 엄마가 가출하셨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난감해하셨고, 아버지는 수염을 깍지 않으셨다.
가출한 지 며칠 후 외갓집에 전화해 봤으나 거기에도 가지 않으셨다.
엄마와 가장 가까운 막내이모께도 여쭤봤지만 이모도 모른다고 하셨다.
엄마의 가출 전후로 아버지는 자주 화를 냈다.
하루는 살짝 타는 냄새가 나는 밥을 드시다 말곤
화가 치밀어 오른 아버지가
엄마 대신 솥단지에다 마구 화를 내더니 급기야 무쇠 솥을 마당에 엎어버리셨다.
그뿐 아니라 엄마를 멸시하는 말과 흘기는 눈짓을 자주 하셨다.
미소를 띤 눈길은 다른 여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 눈길 끝에 닿은 여자가 누구였는지 지금도 기억나는 장소와 사람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나 보다.
그런 남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아내를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자주 보였다.
심지어 어머니를 닮은 면이 있는 우리 형제들까지 싸잡아 비난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어느 모임에 엄마 없이 우리 형제들이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여자 앞에서 우리들을 수치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때 나는 내상을 입었다.
엄마가 가출을 마치고 돌아온 건 한참 후였다.
며칠이었는지, 보름 정도의 기간이었는지 제법 길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안 계시는 동안 아버지를 나무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오자 대뜸 ‘자식들이 다섯이나 있는데 집을 나갈 생각이 들더냐?’고 엄마를 나무랐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돌아오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일이 일어난 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그때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고,
'아버지가 여자에 미쳐 자식마저 버릴 수 있겠구나' 싶은 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내 남동생에게 휘두른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인해
그전에 있었던 일들과 합쳐져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내게서 기피인물 1호가 되어버린 나의 아버지...
우리에겐 관계를 만회할 좋은 기회가 별로 없었다.
10여 년 전 화해하려고 시도했다가 잘 안 됐다.
그 후 아버지에 관해서는 그냥 적당히 묻어두는 쪽을 나는 선택했다. 안전거리를 300km 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