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침,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우리 머리맡에 있는 상자들 때문이었다.
먼저 일어난 언니와 동생이 상자를 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라면 상자에다 필기체 영어로 이름을 써놔서 어린 우리들은 도통 알아볼 수가 없었다.
1960년대 생들인 우리 형제들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영어를 배운 적이 없었고,
그 꼬부랑글자가 영어라는 것만 간신히 알아보았다.
결국 우리들은 각자 자던 자리에 도로 누워 자신의 머리 위쪽에 놓인 상자가 자기 선물이라는데 동의하고,
하나씩 뜯어보았다.
상자는 모두 같은 크기의 라면 박스였다.
상자 안에는 초콜릿, 사탕, 과자, 양말, 털장갑, 노트, 필기구, 풍선 등
십여 가지가 넘는 온갖 것들이 들어 있었다.
오리온 종합선물세트보다 더 재밌는 선물이었다.
우리는 일어나면서부터 선물을 자기 책상에 다 정리할 때까지 즐겁게 탄성을 질렀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 크리스마스였다.
할머니는 우리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에 아버지의 산타 복장을 만드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곤히 자고 있을 때 선물을 놓고 가셨는데 어찌나 민첩했는지 들킨 적이 없었다.
그러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살이 쪄서 그동안 입던 산타복을 수선하게 되었는데,
할머니께서 깜박하고 재봉틀 위에 뒀다가 하교한 우리들에게 그 모습을 들키셨다.
그때서야 우리는 짐작만 하던 산타가 아버지였다는 걸 확신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우리 집 2층과 지붕 사이에는 읍에서 제일 큰 빨간색 별이 달렸다.
가운데 전구를 달고
대나무를 입체적으로 휘어서 별 모양을 만든 후
모든 면을 빨간색 비닐로 꼼꼼히 감아 만든 직경 1m짜리 대형 별이었다.
전구는 검은색 전선에 연결되어 2층에 있는 콘센트에 꽂혀 밤새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그 별이 자랑스러웠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별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교회 사람들이 교인들의 집을 돌며 찬송가를 두 곡씩 불렀다.
그들이 오면 우리는 집안에서 노래를 듣고 있다가 나와서
롯데껌과 해태 과자, 사탕 한주먹씩을 그들 모두에게 나눠줬다.
그러고 나서 잠이 들어 다음날 아침이 되면
우리의 머리맡에는 라면 박스들이 하나씩 있었다.
한동안 매년 다른 것들로 채워진 라면박스를 받았던 것 같다.
언젠가 나도 이런 박스를 포장해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우리 딸들 역시 내가 어렸을 때처럼 엄청 좋아했다.
어느 해인가는 미처 선물상자를 준비하지 못했다.
간단히 카드와 현금봉투를 방 앞에 뒀더니
말로는 ‘감사합니다’라고 하는데,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적당한 박스를 찾아 마트를 배회한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한동안 많은 유감을 안고 살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재능이나 노력에 대해서조차 시큰둥했다.
그런데 내 남편과 큰 딸은 그런 우리 아버지의 입장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하고 동정했다.
내가 좀 더 객관적일 수 있었더라면 유감이 덜 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