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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Dec 27. 2022

나와 아버지 Ⅶ  

-경매로 산 집-

 

나는 초등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얼떨결에 미술감독 B의 얘기에 이어 경매에 얽힌 얘기도 들었다.  

   

한 때는 아버지의 사업이 잘되어 우린 꽤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산도 사고, 밭도 사고, 새로 집도 지었다.

그리고 경매로 나온 어떤 집을 낙찰받았다.

집을 비워 달라는 말을 하려고 낙찰 받은 집에 들렀던 아버지는

 그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고 돌아오셨다.


그 약속이 뭐였냐면

“당신들이 돈을 벌어 이 집을 되찾겠다고 하면

내가 낙찰받을 때 써낸 금액 그대로로 당신들에게 되팔겠습니다. “였다.   

 수십년 살아온 그들의 터전에 대한 애착과 상실감을 

아버지는 잘 이해하고 계셨다.  


당시 우리나라 한 해 경제 성장률은 10%가 넘었다.

아버지 말대로 한다면 이 약속은 아버지에게 손해가 이만저만 나는 게 아니었다!

가만 앉아서 매년 10%이상 손해보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들은 죽기 살기로 일해서

우리 아버지로부터 그 집을 도로 샀다.

 약속대로 아버지는 낙찰받았을 때 금액 그대로 되파셨다!  

    

초등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처음 듣는 얘기에 볼이 상기되어 귀가한 기억이 난다.


     

나는 할아버지를 스승으로 알고 자랐다.  

할아버지는 매사 절제하고 단아하셨다.  나는 그분을 존경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말이 너무 많고 감정기복도 심해서 존경하는 마음은커녕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 아버지에게도 음덕을 쌓아온 역사가 여러 건 있었음을 가끔 들었다.

오지랖이 넓었던 아버지는 동네사람이 재판에서 억울한 벌을 받지 않도록 탄원서를 쓰셨고

익사한 아랫집 오빠의 시신을 모래톱에서 극적으로 꺼냈으며,

우발적인 범죄로 교도소 다녀온 청년을 고용해 그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살 수 있게 도우셨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에게 장학금 수여하는 일도 한 때는 일상사였다.

      

세월이 흘러 친정이 쫄딱 망해 내가 부모님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보조한 지 대략 15년이 다.

 불성실하게 살아서 망한 게 아니라 안목 없는 선택을 하시다보니 그리 됐다.

부담은 되지만 누구를 탓할 마음이 없다.

그리고 부유했던 시절에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을 때때로 성심성의껏 도운 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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