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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Feb 03. 2023

모란이 싹틀 때까지

-스티로폼 박스에 파종한 모란 씨앗-

   

8월 하순 우리 가족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광복절 이후엔 바닷물이 차가워서 수영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었다.

동해안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우리는 모래밭을 퍽퍽하게 걷다가 지쳐 오죽헌으로 가서 산책하자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40년 만에 다시 찾은 오죽헌을 둘러보던 나는 앞뜰에 떨어진 모란씨앗에 시선이 꽂혔다.

    

모란씨앗을 살펴보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묘한 모서리들이 보였다.

럭비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씨앗을 둘러싸고 있던 불가사리 모양의 껍데기가 벌어지면

안에 있던 모란 종자들은 아마도 우주를 향해 중구난방으로 탈출을 시도할 기세로 기껏해야 앞뜰에 떨어졌을 것이다.   

씨앗표면은 시멘트바닥에 떨어져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단단했다.

이래서 모란씨앗은 몇 년간 땅에 묻어놔도 싹이 트지 않는 고약한 종자로 유명한가 보다.    

 

집에 오는 길에 유튜브를 보니 식물집사들의 푸념이 유독 많았다.

가장 흔한 하소연은 씨앗을 땅에 심었는데 다음 해, 그다음 해에도 싹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좀 더 정성을 들인 시도를 했다.

씨를 땅에 묻고 나서 100일간 매일 물을 준 후에 땅을 파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모란씨앗은 처음 모습 그대로로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포기했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완두콩 싹을 틔우듯이 젖은 티슈를 깔고 덮어서 100일간 매일 물을 바꿔주며 뿌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역시 모란씨앗은 미동도 없었고 결국 싹틔우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심지어 평생 화원을 하며 온갖 식물을 키워낸 어르신조차 모란 싹을 10%정도 밖에 틔우지 못했다고 했다.


후에 그 어르신은 비닐하우스 한쪽에 모란씨앗을 심어 방치한 지 3년이 지날 즈음인가

우연히 그 자리에서 싹이 난 모란을 발견하셨는데,

정작 싹이 튼 이유에 대해선 분명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나름 추정되는 이유에 대한 견해를 밝히셨다.     

물론 모란 씨앗을 심어 싹들쉽게 튼 사례도 있었다.

공통점은 어미 모란나무 바로 아래에 씨를 심고 낙엽으로 덮어주었더니 다음 해 싹이 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댓글에 ‘모란씨앗이 까맣고 반들반들해질 정도로 익으면 싹이 트기 어려우니 덜 익었을 때 얼른 땅에 심어야 싹이 틀 확률이 높아진다.’는 누군가의 친절한 조언이 있었다.


하여간 모란씨앗으로 새싹을 틔우기란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바싹 잘 익어 땅에 떨어진 씨앗을 주워 온 데다 우리 집엔 모란도 없으니

그들의 말대로라면 내가 모란 싹을 틔울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별명이 ‘식물본능’인 나는 이 씨앗의 발아를 한 번 시도해 볼 만하다고 여겼다.

곧장 스티로폼 박스 바닥에 송곳으로 구멍을 아홉 개 내고, 농협에서 산 상토를 담았다.     


유튜브를 보니 씨앗표면을 손톱 다듬는 줄로 생채기를 내면 싹이 잘 튼다는 얘기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이런 자극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하고...

생채기가 난 부위가 다른 부위에 비해 부드럽고 약하니 그곳으로 뿌리가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그쪽으로 뿌리가 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작은 무적함대가 갖춘 균형을 깨뜨려서

싹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뭔가 역동적인 움직임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동물이든 식물이든 위기상황에서는 종자를 퍼뜨리려고 더 안간힘을 쓰지 않던가!     


하여간 나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손톱 다듬는 줄로 쓱쓱 여러 번 힘주어 긁었다.

손가락으로 잡기도 힘든 미끄럽고 작은 모서리를 지닌 씨앗 70여 개를 하나씩 긁자니 열이 좀 뻗쳤다.

이 과정이 제일 재미가 없고 인내심이 필요했다.

줄로 열심히 긁은 곳은 까만 표면 아래로 누르스름한 속살이 드러났다.

나는 생채기 낸 씨앗을 상토에 뿌리고, 그 위로 흙을 5cm 정도 덮어 그늘에 두었다.


그러고 나서 매일 아침 물을 주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물을 주고 100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인내심은 길지 못했다.

80일 정도 지났을 때 플라스틱 숟갈로 흙을 조심스레 파보았다.

내가 흙을 파자 남편이 한마디 했다. 더 기다렸다가 파지 뭘 그리 급하게 파보냐면서...

그런데 놀랍게도 까만 콩 같던 씨앗 아래로 하얗게 빛나는 뿌리들이 3~5cm 정도 자라 있었다.

나는 너무 좋아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얼른 도로 묻었다.

묻기 전에 살펴보니 생채기 낸 부위는 여전했다.

즉 뿌리가 난 위치는 줄로 긁어 생채기를 낸 부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뿌리가 하얗게 나온 것을 본 뒤로 나는 물 주기를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였다.

11월 말이 되자 나는 낙엽을 흙 위로 5cm 정도 덮어 마당의 양지로 스티로폼 박스를 옮겼다.

양지에 두긴 했지만 올 겨울은 영하 16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로 눈이 녹지 않을 지경이었다.

파종한 지 140일 정도 되는 1월 17일, 나는 또 플라스틱 숟갈로 낙엽 아래 흙을 들춰봤다.

남편이 옆에서 “가만히 좀 놔두지 왜 자꾸 들춰보냐!”라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모란뿌리가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니 확인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행히 하얀 뿌리는 그대로였고,

10월까진 까맣고 윤이 났던 씨앗이 마치 콩나물 대가리처럼 모양이 바뀌어 있었다.

양쪽으로 살짝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 부위가 어쩌면 떡잎이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이 겨울을 무사히 지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마당에서 베란다로 모란 박스를 옮겼다.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모란 씨앗은 아래로 뿌리가 나오는 온도와 햇볕 상태,

위로 싹이 트는 온도와 햇볕 요구량이 서로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씨앗으로 발아시키는 것이 그토록 까다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나의 스티로폼 박스에서 모란 발아가 성공한다면

이 소식은 모란을 좋아하는 다른 식물집사들에게도 희소식이 될 것이다.

앞으로 50일 정도 지난 후 나는 스티로폼 박스의 낙엽을 걷어내고 모란상태를 확인할 것이다.


70여 개의 씨앗 중 몇 퍼센트나 발아에 성공할 것인가?

그중 단 몇 개라도 성공해도 나는 감지덕지다.

마당이 작으니 세 개만 심어도 된다.

이런 방식으로 발아에 성공한 예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나름 성취감도 있을 것이다.

성공률이 높으면 금상첨화다.

화분에 두어 개씩 담아 지인들에게 나눔을 할 수 있으리라.      


오죽헌에서 모란씨를 주운 후로 나는 새 생명을 품은 식물어미가 된 기분이다.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분만의 때를 기다리듯 다가오는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설레고 또 설렌다.    

   

추신)

글을 이튿날인 2월 5일, 

우연히 낙엽들 사이로 초록색을 희끗 보았다.

탄성을 지르며 낙엽을  걷어내는 내 손이 발발 떨렸다.

봄은 내 곁에 이미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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