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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Feb 03. 2023

 순찰이와 해찰이, 그리고 치타여사

-들고양이 이야기-


“아이코! 엄마야!”

전원주택에서 뱀을 만난 건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봄이었다.

잔디밭 위를 사선으로 미끄러지며 내달리는 녀석의 정체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아랫집에서 준 백반을 집 둘레에 뿌렸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마당에 나가기가 두려웠다.


그 무렵 들고양이 두 마리가 아랫집 텃밭에 가끔 나타났다.

고양이들은 차가 한 대 지나갈만한 농로를 저벅저벅 걸어 옆 동네에서 우리 동네로 왔다.

우리 동네라 해봤자 딸랑 집이 세 채뿐이다.

그들은 아랫집을 거쳐 우리 집과 뒷집을 순찰한 후 언덕을 넘어

논두렁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옆동네로 되돌아가곤 했다.    

    

나는 들고양이가 우리 집 덩굴장미 앞에 싼 똥을 보고 처음엔 기겁을 했다.

개똥만큼 커다란 고양이 똥을 보자 ‘이 노무시키가!’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는 게 죄라고 기생충학 시간에 배운 감염병도 떠올랐다.  

    

들고양이 수컷 두 마리는 형제로 보인다. 체격도 무늬도 거의 같다.

한 놈은 입술 양쪽에 누런 무늬가 있는데 눈매가 예쁘장하게 날카로웠고,

다른 한 놈은 왼쪽 입술에만 누런 무늬가 있는 데다 늘 기분이 별로인 듯한 표정이다.     

눈매가 예쁘장한 녀석은 어쩌다 한 번 우리 집에 들렸고, 우리에게 하악질을 하지 않았다.

반면  심기불편해 보이시는 녀석은 매번 우리 집 마당을 한 바퀴 돌아가므로 순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순찰이는 때론 온몸에 흙을 뒤집어쓰고 나타나거나 뺨에  피가 나 있기도 했다.

동네 고양이들끼리 어디서 패싸움을 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인상이 고약하고 어깨는 우락부락 근육질인 순찰이는 사람을 몹시 경계하여

밥을 주는 내게도 한 달 넘게 하악질을 하곤 했다.

지금도 기분이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내게 하악질을 해댄다.

은혜를 모르는 녀석 같다.     


처음엔 이 동네에 널려있을 뱀과 쥐를 생각하며 따로 먹이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6월 말 경, 순찰이가 몹시 야위고 털이 빠진 채로 돌아다녔다.

병에 걸린 것 같았다.

곧 장마가 시작될 텐데 이대로 먹이활동이 시원찮으면 큰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집사가 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에겐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하루는 시내에 좀 다녀오겠다더니 남편이 장마를 뚫고 고양이사료를 사 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대문 옆에 사료통과 물통을 두고 하루 한 번 사료와 물을 채워줬다.

순찰이는 매일 우리 집을 다녀갔고,

 이후로 우리 집 마당에는 뱀이 나타나지 않았고 데크 위의 쥐똥도 사라졌다.   

  

늦가을 어느 날, 순찰이가 호리호리한 회색 줄무늬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내게 ‘이봐요, 집사아주머니! 얘가 내 애묘요.’ 하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순찰이가 다가왔다.

몹시도 영악해 보이는 그의 회색 줄무늬 애묘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잘난 체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순찰이가 인사 가자고 해서 따라왔어요. 내가 굳이 당신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겠죠.’

딱 이런 태도였다.

여친 데리고 와서 가오 잡는 순찰이도 어처구니 없는데

턱 추켜세우고 잘난 척하는 여친 꼴을 보

나는 예상치 못한 상견례를 당하는 시엄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순찰이의 애묘를 치타여사라 부르기로 했다.

두 들고양이는 내가 준 사료와 참치를 서로 머리를 들이밀면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식사준비를 하다

누군가 부엌문 밖에서 나를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니 순찰이와 치타여사가 부엌 앞에서 집사를 기다리며 다정하게 붙어 있었다.

밤새 신방을 차린 듯했다.

어제 상견례하고 오늘 바로 신방 차린 저 당당함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끽소리도 못하고

나의 아침식사를 먹기도 전에

 육고기와 사료로 진수성찬을 차려 그들에게 내놨다.

조폭 냥아치 같은 우리 순찰이가 그 형제인 해찰이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고기를

그녀에게 양보하고 나눠 먹는 걸 보니, 내 기분이 묘했다.

난 이틀 연속으로 몹시 비뚤어진 시어매로 빙의가 됐다.

‘쟤는 왜 저리 잘난 척이야! 누굴 믿는지는 알겠다만 괘씸하네.’ 구시렁구시렁...    

 

내 기억에 그다음 날이 아마 치타여사가 우리 집에 온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첫날은 그래도 좀 낯선 듯 조심하더니 셋째 날이 되자 치타여사는 순찰이 보다 활발하게 움직였다.

 사료가 부족했던지 부엌문 안쪽에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밥 더 줘, 아줌마.’하면서 다리를 쫘악 뻗대고 서 있었다.

 그 당당함에 주눅이 들어 나는 사료를 더 퍼줘야 했다.


사료를 다 먹어갈 무렵 순찰이와 치타여사 앞에 순찰이의 형제, 해찰이가 등장했다.

치타여사는 바로 떠나 버렸고

순찰이와 해찰이는 심각하게 으르렁거리며 무려 세 시간 동안 대치했다.    

 

다음 날 순찰이는 좌측 뺨의 털몽땅 쥐어 뜯기고 우측 뺨은 긁혀서 피가 난 채로 나타났다.

순찰이가 다녀간 후 해찰이도 왔는데, 해찰이는 얼굴이 멀쩡했다.

순찰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분명 형제의 난이 일어났을 것으로 상상했는데,

해찰이가 너무 멀끔하다 보니 어찌 된 영문인지 해석이 안 됐다.

지금도 순찰이와 해찰이는 마주치면 일촉즉발로 대치한다.

순찰이의 호전적 반응에 대해 

해찰이는 짜증을 최대한 억누르며 순찰이와 마찰을 피하곤 한다.

나는 네이버를 검색해서 고양이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비록 낯짝은 엉망진창이지만 순찰이가 더 우위에 있는 것 같다.     

둘째아 말로는 고양이 세계에서는 얼굴이 큰 게 미남이라고 하며, 인기가 많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는 고양이가 대략 열 마리 정도 있는데, 그중 순찰이 얼굴이 제일 크다.

해찰이도 만만치 않지만, 그들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온 동네 수컷을 순찰이가 손보고 다니는 것만 같다.

 그러다 자기도 다치고...

순찰이와 해찰이 그리고 치타여사 사이는 어쩌면 삼각관계가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떻든 치타 여사가 낳을 새끼고양이가 궁금하다.     


며칠 전 나는 레슨 받으러 나가는 길에 논두렁을 걸어가는 순찰이를 봤다.

운전석 창문을 내려 순찰이를 부르자 순찰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내가 한번 더 “순찰아”하고 이름을 부르자

순찰이는 시선을 내게 맞추고서 갑자기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시전 했다.

나는 그 녀석이 배를 드러내고 구르는 동안 하얀 털에 쌓인 동글동글한 방울 두 개를 봤다.

‘어우! 안 본 눈 삽니다. 저 썩을 놈이...’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곤 얼른 차 문을 올리고 학원으로 쌩하니 달려갔다.  

    

몹시 추운 날 며칠은 순찰이가 우리 집 부엌 앞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잤다.

우리는 참치캔과 대충 살 발라먹은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병어를 물에 헹구어

양념을 빼고 들고양이에게 주었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병 걸려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전부였는데, 어느새 들냥이들의 집사가 되었다.

우리 애들은 순찰이와 해찰이를 어서 중성화수술을 시켜야 한다며 난리다.      

자꾸 보니 정이 들어서

들냥이들이 안 오는 날엔 문 밖을 보며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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