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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Feb 11. 2023

왼쪽 손가락

-나의 역린 1-

   

사촌동생이 내 왼손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더니 유심히 살펴보고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누나, 이 손가락 내가 수술해 줄까?”라고 물었다.

수술 후엔 현재보다 힘을 못줄 가능성이 있는 대신

어디 내놔도 반듯한 손가락이 될 것이라 했다.   

  

사촌동생은 내 손가락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 그날 식사하면서 처음 알아차렸나 보다.  

내 손가락을 보던 그 애의 눈에서

내 손가락에 대한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답했다. “기능적으로 개선되는 게 없다면 그냥 이대로 살게.”라고.  

   

세 살 때 아무 생각 없이 한 소꿉놀이의 결과로 내 손가락에는 장애가 생겼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오신 우리 집 어른들은

내 손가락 하나가 완전히 잘려 나가 버린 줄 알고

크게 충격을 받으셨다.

언니의 말에 의하면 사고 후 몇 달 동안 나는 엄마의 등에서 날마다 울며 잠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세손이 오른손이라서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이다.

물론 양쪽 손가락이 협응하여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과제 다른 손가락이 덤터기를 써야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를 훨씬 많이 벌려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은 따랐지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고,

플룻이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를 배울 때도 손모양을 슬쩍 바꾸면 됐다.


장애를 장애로 느낀 것은

내가 간절히 배우고 싶었던 첼로를 포기해야 했을 때였다.

바레 주법을 구사할 수 없는 한계는 너무나 뚜렷했다.

이 장벽은 클래식 기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르페지오 주법의 강자면 뭐하나?

왼손과 오른손을 바꿔서 연주하는 것을 지도해 주겠다고 원장님이 제안하셨지만,

오른손잡이였던 나는 타고난 왼손잡이처럼 연주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왼쪽 손에 건초염이 생겼을 때   

‘손가락에 장애가 있으니 이런 병도 쉽게 생겼나 보다.’라며 괜한 불평과 연민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 공업용 미싱으로 바느질하던 내 오랜 취미생활은 대폭 조정됐다.

건초염이 덜해지자 한동안 손가락의 장애에 대해 잊고 살았다.

드럼을 배우기 전까지 말이다.


스틱을 잡을 때 오른쪽과 달리 왼쪽 손가락은 제대로 잡아주지 못해 약간 덜렁거린다.

또 덜렁거림을 줄이려고 꽉 잡으면 스내어에 내려치는 속도가 줄어서 소리가 덜 선명해진다.

혼자 두드릴 땐 몰랐지만 선생님이 보고 지적을 해주시니 그때야 인식을 하게 됐다.  

연습량으로 차츰 이 문제를 극복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다소 핸디캡이 있더라도 드럼 배우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다.


어렸을 때는 장애가 있는 손가락이 부끄러웠다.

특히 누가 빤히 내 왼쪽 손가락을 주시하고 있거나

내 왼쪽 손가락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거나

'다치셨어요?'라고 물어보면

마치 내 존재가치가 뚝 떨어지기라도 하는 양 위축되고 수치심까지 느꼈다.  

그러다 40대 무렵부터는

‘이 정도이길 다행이지. 뭐 어때? 이 손가락으로 피아노도 쳤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

훗날에는 ‘드럼 스틱도 잡았는데!’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할매 드러머를 상상하며 혼자 조용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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