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와소나무 Mar 18. 2023

메주콩과 질주본능

-웬만해선 말릴 수 없다-

아이가 혼자 잘 논다 싶어서 보면

조용히 대형사고 치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아이 키워 본 사람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우리 언니는 어렸을 때 우리 집 부엌을 태웠다.

플라스틱 장난감에다 코스모스와 잡초들을 담아 어른들의 된장찌개 끓이는 흉내를 내다가

플라스틱 장난감이 불타면서 그리 됐다.

부엌 한쪽 벽이 시커멓게 그을려진 정도로 마무리된 게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우린 큰애는 작은애 눈에 쌍꺼풀을 만들어준답시고 눈을 찔렀는데, 실명시키지 않은 게 어딘가!

나는 가끔 어린이들을 지키는 천사나 정령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10여 년 전 접수실로부터 A아동이 치료실에 대기 중이라는 콜을 받았다.

A아동은 다른 일곱 살 아이들에 비해 많이 말랐었다. 내 어린 시절 외모와 비슷했다.

나는 진료실에서 나와 치료실의 드레싱카 앞에서 손을 소독했다.

그러다 잠시 고개를 돌려 배드 위에 앉은 아이를 보며 인사를 건넸는데,

때마침 아이의 일그러지고 있는 얼굴을 보았다.

나의 표정에 A엄마도 즉시 상황을 알아차렸다.

 A의 엄마는 아이를 거꾸로 들고서 등을 쳤다.

바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여섯 번의 시도 끝에 아이의 입에서 장난감이 튀어나왔다.

A아동의 엄마가 의사였기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내 수명이 아마 몇 년은 짧아졌을 것이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문제의 장난감을 살펴보니 한의원 오기 전에 들린 놀이치료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내가 하임리히법을 떠올리고 있을 때 A아동의 엄마는 유아들 응급조치하듯 했다.

마르긴 했어도 일곱 살 아이를 거꾸로 든 그 초인적인 힘의 원천은 모성이었을 것 같다.


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올 때부터 B아동이 뭔가 불편해 보였다.

B는 놀다가 짜증을 냈다가를 반복했다. 말을 못 하니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른쪽 콧구멍에 누런 것을 보았다.

그건 바로 콩이었다.

그런데 그 콩을 꺼낼 방법이 없었다.

콧속의 적당한 온도와 습도 덕분에 몇 시간 동안 콩이 탱탱 잘 불어 있었다.

빼내 보려고 위로 아래로 옆으로 벌려보고 눌러보고 핀셋으로 콩을 잡아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콩은 콧물과 섞여 너무 미끄러웠고, 잡히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결국 이비인후과에 보내고서야 해결되었다.

귀에 별 걸 다 집어넣는 것은 봤지만 코에 메주콩을 넣었을 줄이야...


C아동은 엄마 등에 업혀있던 아이였다.

뇌수술을 받은 지 보름 밖에 안 됐고, 아직 팔다리를 가누지 못했다.

아이의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진료실 앞 복도를 지나가던 간호사가 발견했다.

등에 업은 C를 내려서 살펴보던 C의 엄마는 엄청 놀란 나머지

당장 뇌수술을 받은 강북의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뇌수술받은 지 보름 밖에 안 됐는데

귀에서 이렇게 많은 피가 흘러나오니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요.”라며 울부짖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살펴보니 아이의 의식이나 컨디션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손톱에 긁혀 외이도에 상처가 날 수 있으니 그걸 먼저 살펴보는 게 좋겠다.’라 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흘린 피의 양을 보세요. 이게 어떻게 긁혀서 나올 수 있는 피의 양인가요?

게다가 우리 애는 아직 팔과 손을 쓸 줄 몰라요. 팔이 어깨 위로 올라온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라고요! “라며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아이가 뇌의 문제로 이렇게 출혈을 한다면 지금처럼 의식이 또렷할 수 없을 것’이라며

C의 엄마를 계속 안심시키고, 곧장 간호사를 대동하여 한의원 근처 이비인후과에 다녀오게 했다.

결과는 역시 내 예상대로 C가 손톱으로 우연히 귀를 긁어낸 상처였다.

C아동의 엄마 말대로 출혈량이 적지 않아서 나도 속으론 조금 긴장했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한 때 우리 한의원의 모든 창문에 가로로 쇠막대기가 10cm 간격으로 줄줄이 설치되었다.

세로로 했다간 감옥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어서 가로로 설치했는데

그건 자폐아동들이 창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된 사유는 실제로 그런 사고가 날 뻔했기 때문이었고,

결국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자신의 집에서 창밖으로 뛰어 나갔다.

하늘의 도우심으로 그 아이는 아파트 밖 나무 위로 떨어진 후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곤 아홉 살 소년은 양쪽 다리에 통 깁스를 하고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한의원에 나타났다.

목발을 짚고 한의원 복도를 내달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양쪽에서 밀착방어를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소년의 질주본능을 막을 수 없었다.      


부모에게 자녀란 평생 노심초사의 대상일 것이다.

더구나 장애가 있는 자녀의 부모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리라.

이 아이들을 치료하고 교육하는 기관에 종사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천사든 조상님이든 정령이든 간에 부디 모든 아이들을 잘 지켜주시길 기원한다.  

우리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들, 사무직원들의 수고에 나는 늘 고마웠고,

회상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진료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잘라야 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