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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Apr 05. 2023

시각장애 어린이들

  

우연히 시각장애 어린이 대여섯 명을 진료한 적이 있었다.

그중 네 명은 몇 개월간 계속 한약을 복용한 후에 시력이 생겼다.


그런데 시각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의 부모가

애초에 나를 찾아온 이유는

자녀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를 찾아온 까닭이 ‘또래에 비해 발달이 너무 늦어요.’였지 ‘앞을 못 봅니다.’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난 몇 년 간 시각장애 자녀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 살아온 부모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이 아직 일곱 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눈을 위해 사용하는 약과 소아의 발달을 촉진하는 약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기존의 처방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처방전을 만들어 썼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섯 명 전부가 시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두 아이는 끝내 시력에 아무런 개선이 없었다.


한 아이는 사슴의 눈처럼 아름다웠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뇌 MRI검사 자료를 보면 왜 그 아이가 볼 수 없는지 분명했다.

 눈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눈을 지나 영상을 만들기까지 거치는

시각정보가 전달되는 길의 80% 이상과 뇌후두부 대부분이 손상된 상황이었다.

마치 문을 여니 낭떠러지 밖에 없었다는 식이었다.  

몇 달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길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아이는 겉으로 봤을 때부터 뭔가 느낌이 달랐다.

뭐가 다르기에 어색한 느낌을 주는 건지 살펴봤다.

눈을 정면에서 보면

가운데 까만 부분과 그 옆으로 약간 갈색 부분, 그리고 하얀 공막 이 세 부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아이는 까맣게 보이는 부분과 갈색으로 보이는 부분의 경계나 차이가 없었다.

 동공 전체가 똑같이 까맣다 보니 낯선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몇 달간 치료를 했으나 여전히 경계가 생기지 않았다.


시력이 생긴 아이들은 치료를 시작한 후

짧게는 3개월 무렵부터 차도가 나타났고,

가장 느리게 차도가 나타난 아이는 투약을 지속한 지 5~6개월 무렵부터였다.

6개월을 시한으로 정해서 이때까지 차도가 없으면 더 이상 관련치료를 하지 않는 기준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6개월째 들어서면서 보기 시작했던 아슬아슬한 경험이 있다.

그 아이는 그 후로 2년 이상 더 치료를 지속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은 너나없이 눈을 감고, 손으로 여기저기 더듬었다.

벽을 더듬고 책상이나 가구의 모서리를 더듬어서 이동했고, 촉각과 청각에 예민했다.

그러다 시력이 조금 생기고서부터는 눈을 가늘게 떠보거나

혹은 희번덕 눈을 한 번씩 굴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처음엔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도대체 눈의 어디 즈음에 가 있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주로 하얀 공막만 보였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던 나는

눈 뒤쪽으로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넘어가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이마 쪽으로 쏠려 초승달 만하게 보이던 까만 눈동자가

차츰 눈의 중앙으로 위치를 잡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행스럽고 기쁜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꽤 심한 곁눈질(주변시)을 할 때부터 뭔가가 아이 눈에 보이는 같았지만,

눈으로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눈을 도로 질끈 감아버리기 일쑤였다.

시력이 생겨도 눈을 감고 손으로 더듬는 게 더 익숙하고 안심이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공간에 대해 엄청난 불안을 겪는 것 같았다.

아마도 뇌에서 공간에 대한 지각정보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게 아닐까?

마치 우리가 어렸을 때 계단을 올라가는 건 다리만 아프면 그만이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발이 허공에 마구 휘저어지며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던 것처럼!


아이들은 시력이 나아지면서 운동발달이 눈에 띄게 개선되어 갔다.

균형감각도 더 생기고, 또래들에 비해 뻣뻣하던 동작도 조금씩 부드러워져 갔다.

 엄마의 입모양을 볼 수 있어서인지 말을 따라 하는 것도 속도가 붙었다.

몇 년 치료하면서 보니 아이들이 초기에는 동화책을 눈에 딱 붙이다시피 대고 보더니

나중에는 귀여운 안경을 쓰고서 무릎 위에 동화책을 펴놓고 읽었다.


그 아이들이 대체로 나보다 시력이 안 좋긴 하지만

그들도 나도 안경을 쓰고 세상을 잘 보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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