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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May 20. 2023

밥을 사고, 정성을 들여야겠다

-친정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느 날 새벽 4시경 병동간호사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자다가 휴대폰 진동음을 느낀 나는

눈을 뜨기도 전에 이 전화의 의미를 직감했다.


내 고향은 경상남도 끝에 있는 시골이다.

그리고 고향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의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나는 두 가지 일이 인상 깊었다.


하나는, 문상객 중에 20~40대 젊은이들이 제법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와 40~60년가량의 나이차가 있는 이들이 조문하러 오다니 의아했다.


나는 그들이 조문 후 식사할 때 조심스레 물어봤다.

"어떻게 저희 아버지를 아시고 이렇게 찾아 오셨습니까?"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아버지는) 저희에게 자주 밥을 사주셨던 분이세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왔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나이불문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에게 종종 밥을 사셨다고 한다.

돈이 여유가 있을 때는 비싼 소고기를 사줬다고 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내 초등학교 동창조차 '너희 아버지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밥을 사면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는 건가?

나도 이제부터 밥을 자주 사야겠다.


다른 하나는, 언니와 형부의 지인이 하신 일이었다.

그분은 일식집을 하신다.  서울에서 경남까지 문상을 오셨다.  화환도 보내셨다.

그런데 이 분이 첫째 날 조문을 하시고 서울로 올라간 후 둘째 날 버스로 음식을 보내셨다.

조카들이 터미널에 가서 무려 100인 분씩의 초밥과 전복죽, 주먹밥 등을 몇 박스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둘째 날 저녁에 문상 오신 분들은

서울 강남의 일식도 함께 맛보시고 다들 감탄해 마지않았다.

84세까지 비교적 재밌게 사신 우리 아버지도 운이 좋았지만

문상 오신 분들도 특별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형제분들께는 집에 가서 편안히 드실 수 있도록 언니의 지휘 하에 따로  챙겨드렸다.


나는 언니와 형부께

'이건 예의를 차린 정도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정성이다.

무슨 연고냐?'라고 물었다.


사연은 이랬다.

일식집 사장님께는 90대 어머니가 계셨는데, 치아가 좋지 않아 잘 잡숫지 못했다고 한다.

사장님은 지금도 매년 서울대병원에 몇 억씩 후원을 하고 있다. 그 당시에도 그랬다.

그런데 서울대치대병원조차 '할머니를 모셔 오면 잘 봐드리겠다.'라고 할 뿐

아무도 왕진을 해주겠다고 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 얘기를 언니를 통해 전해 들은 형부가

'내가 가서 봐드리겠다'라고 하고서

그 후 집으로 왕진을 갔고, 틀니를 맞춰드렸다. 노모는  아들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다시 드실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이런 인연으로 그분이 이번 장례식에서

언니와 형부에게 자신의 성의를 다했던 것이었다.


나는 기본적인 예의는 차리고 사는 편인,

일식집 사장님의 성의를 보고 난 후 생각이 좀 달라졌다.

예의를 차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씀씀이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싶어졌다.

ㅇㄷ사장님께 감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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