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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Jun 03. 2023

부담스러운 후배

-덕유산 계곡물에 입수할 것인가?-

보수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이따금 동문 선배님들을 뵌다.

어떤 분들은 나를 든든한 후배라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부담스러운 후배로 여긴다.

몇몇 선배들과 서먹서먹한 상태로 서로 형식적으로 존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약간의 반골기질을 갖고 있다.

타당한 이유 없이 뭔가를 강요당하는 상황에선

 가끔씩 내 목소리를 분명하게 냈다.

전투적인 말투로 대드는 것은 아니고,

차분하고 짧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나의 10대~20대 시절만 해도

소위 군대문화가 학교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선배의 말이라면 후배가 입도 벙긋하기 어려웠다.

MT 따라갔다가 한 밤 중에 소집되어

남녀불문 엎드려뻗쳐를 했던 시대였으니까.


 그러나 '이건 아니다.'싶은 정도의 일이면

상대방의 노여움을 예상하면서도 내 의견을 굳이 피력했다.

그게 그 시절 선배님들에겐 싹수없는 후배의 반란으로 각인이 됐던 것이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 내 대학동기가 기억하는 일 중 하나는 이 것이다.

예 2 가을에 우리 학과 영남향우회에서 덕유산으로 MT를 갔다.

화기애애하게 모임이 진행되는 것 같더니만

술을 마신 어떤 선배의 술주정이었는지 아니면 평소 선배님들의 불만이 쌓였던 게 폭발한 것인지

하여간 밤 10시가 되어 가는데 덕유산 계곡물에 후배들을 기수별로 입수하게 했다.

선배들의 공포분위기 조성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속으론 "삼겹살에 술 잘 마시고선 이게 또 무슨 일이고?"싶었다.


고압적인 태도로 일장연설을 하던 해병대출신 본 3 선배가

"할 말 있나?"라며 우리를 향해 고함을 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모두가 얼어있던 상황에서 선배님들과 동기들은 당황했고 모든 이목이 내게 쏠렸다.

 내 머리 위로 야구방망이가 시속 160km로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저는 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분노에 찬 선배의 일갈은 "왜?"였다.

나는 "생리 중입니다."라 대답했다.


나의 대답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아까보다 더 당황한 선배들은 잠시 우왕좌왕하더니

이 분위기를 빨리 수습하려는지

"oo 이를 제외한 모두 계곡에 입수 시작!"을 외쳤다.


그날 계곡에 빠졌다가 돌아온 선후배들은 오한으로 한참이나 온몸을 달달달 떨었다.

내 동기는 숙소로 돌아와 '진짜로 생리 중이냐?'라고 물었고, 

나는 선배들의 위신과 나의 안전을 위해 노코멘트했다.

귀가한 후에 나는 생리 중이지 않았음을 그 친구에게 이실직고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두어 번 더 있자 향우회 분위기가 아예 바뀌어버렸다.

 나는 향우회 선배들로부터 어떤 부당한 압력도 받지 않고 졸업했고,

그 대가로 지금까지 몇몇 선배들이 말을 놓지 않는 부담스러운 후배가 되어있다.

일부 선배만이 친오빠처럼 자상하고 다정하게 나를 대하신다.


윗동서 되는 우리 형님은

"세상에서 자네가 제일 무섭네!"그러셨다.

"아이고 형님,  언성 한번 높이지 않는 제가 대체 왜 무서우세요?"라고 반문했더니

우리 형님이 이러셨다.

"나는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도

(한 달간 벽을 보며 연습해도) 혀가 굳어버리고 말이 잘 안 나와.

그런데 동서는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잖아!"라고 하셨다.


하고 싶은 말을 악다구니를 써가며 한다고 해서 더 잘 들릴 것인가?

예의를 차려서 말한다고한들 나와 의견이 다른데 어찌 상대방의 귀에 거슬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반감을 예상하면서도

내 의견을 말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말을 안 했다면 더 오래 후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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