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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Aug 09. 2024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나의 무좀기

- 이무기의 발톱-

    

결혼한 지 1~2년 지난 어느 날, 새끼발가락이 가려웠다.

이것이 내 발톱무좀의 시작이었다.

매일 발을 씻고 발수건으로 뽀득뽀득 닦고 드라이기로 말렸지만

무좀은 조금 나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발톱은 발톱깎이에 팡 튕겨나갈 정도로 두꺼워졌고, 보기 흉한 허연색으로 변했다.     

그제야 동네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무좀 치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하나는 무좀약만으로 치료하는 방법,

또 하나는 무좀 걸린 발톱을 수술하는 동시에 약도 같이 복용하는 방법이었다.

근치라는 점에서 두 번째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발톱수술까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주저했다.

 손톱 발톱 주변이 얼마나 예민한가!

수술할 때 통증이 두렵다고 말씀드렸더니만,

의사 선생님은 '마취하고 하니까 괜찮을 거라'라고 하셨다.

나는 그다음 주 수요일에 발톱수술을 받기로 예약했다.


슬리퍼를 챙겨 오라 하셔서 수술하는 날 나는 슬리퍼를 아예 신고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샌들을 신고 갔어야 했다.     

내가 베드에 눕자 의사 선생님은 큼직한 주사기에 마취제를 넣으셨다.

그리곤 “발톱 왼쪽과 오른쪽 두 군데 다 마취를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사기로 발톱 바로 옆을 찌르셨다.

아아악! 순간 내 눈에서 불이 나더니 눈물이 고였다.

수술하기로 한 걸 즉시 후회했다.

‘그런데 저걸 옆에 또 한 번 찔러야 한다고? 아이고  맙소사!’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이제와 어쩌겠는가!

유관순 열사의 고통을 100분의 1 즈음 겪고 나서야 마취가 끝났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내 발톱을 조각조각 잘라내다가 마침내 잡아 뽑듯이 제거했다.

과연 그분 말씀대로 마취를 하고 뽑으니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하지만...

새끼발가락에 붕대를 감고 베드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을 무렵

하필 그때가 마취가 풀리던 시점이었는지

내 맥박수에 딱딱 맞춰 새끼발가락 쪽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시작됐다.

어찌나 왁왁거렸는지 붕대를 뚫고 혈관이 탈출이라도 감행할 기세였다.

슬리퍼에 발가락 넣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진행해야 할 엄숙한 일일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사무실을 30분에 걸쳐 간신히 도착했다.

발가락에 물리적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뒤꿈치만 땅에 대고 질질 끌듯이 걸었는데도

슬리퍼는 정말이지 너무 무정했다.

삼디다스의 끈 지나가는 부분과 발등 사이가 살짝이라도 들썩일라치면

그 파동은 면도날에 베는 통증으로 광속 화답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미련했던 나는 미리 병가를 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 상태로 한동안 출퇴근을 했다.

‘3일만 참으면 통증이 줄겠지!’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수술 후 2주일 간은  

발가락 끝으로부터 전달되는 날카로운 통증과 욱신거림으로 잠도 편히 못 잤다.

무좀약도 병행했다.  간기능검사를 받아야 한대서 복용 전과 복용 중에 두 번 피를 뽑았던 것 같다.

이런 치료를 두 번 다시 받지 않으려면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다 따라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새로 나온 나의 새끼발톱은 다행히 투명하고 얇았다.     

그런데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수술을 하지 않은 오른쪽 새끼발톱에도 무좀이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 발가락은 무좀약을 복용했을 땐 잠시 덜하더니 한 두 달도 못 버티고 금세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하지만 왼쪽발톱처럼 수술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대한 잘 관리를 하려고 노력했다.

스타킹 대신 양말을 신고,

예쁜 구두 대신 운동화로 바꿔 신으며

매일 씻고 닦고 드라이로 말렸다.


하지만 해마다 장마기간이나 추운 겨울이 되면 발가락과 발톱은 너무나 가려웠고

긁어도 결코 시원해지지 않는 데다

긁을수록 더욱 미치게 가려워서 기어이 피를 보는 날이 많았다.

발톱깎이로 최대한 깎아내고 약을 발라도 소용없었다.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벗겨지고 그 패인 곳에서 피가 흘렀다.

심할 때는 3일에 한 번씩 이 상태로 피를 보곤 했다.

다시 병원에 가서 간기능검사를 받아가며 무좀약을 복용했지만

끝내 무좀은 낫지 않았다.


이렇게 30여 년 간 무좀과 긴 줄다리기를 했다.

봄가을엔 덜하고 여름 장마기간엔 다른 발가락으로까지 번지기를 반복하면서.   

그러다 몇 년 전 시골 전원주택으로 이사 왔다.

텃밭과 꽃밭을 일구느라 피부가 갈색으로 바뀔 정도로 하루에도 여러 번 마당을 돌아다녔다.

첫 해부터 장마기간과 겨울철 모두 무좀 증상이 줄었다.

가렵기는 해도 물집이 생기거나 피부가 쩍 벌어져 피가 나지는 않았다.

두 번째 해엔 장마기간에만 조금 가려웠고, 겨울철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발톱도 차츰 투명한 색으로 바뀌고 얇아졌다.

 

그리고 이번으로 세 번째 장마기간을 지나고 있는데,

오늘 아침 문득 깨달았다. 올해 한 번도 가렵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가락과 발톱 모두 보송보송하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그야말로 아무런 치료 없이 무좀이 저절로 나아졌다.

돌아보니 어쩌면 도시생활이 전반적으로 혈액순환에 걸림돌이 되어 무좀을 그리 오래 끌었나 싶다.

그래서 이번 가을부터는 평소 활동량에 실내운동량을 조금 더 추가해서 발톱 무좀의 경과를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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