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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Sep 08. 2024

태동

-존재감 뿜뿜-

  

나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상상도 못한 입덧을 했다.

음식은 고사하고 물도 삼키지 못하고 토하다 보니

며칠에 한 번 주사를 맞으며 근근이 생존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국에서 1~2명은 입덧이 심해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했는데,

올해는 내 차례인가 싶을 정도로 극악무도했다.

임신 전 50kg 던 나의 체중은 매주 줄어가더니 급기야 38kg을 찍었다.

두 달 사이에 나는 손가락 들 힘조차 없어졌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팬티 한 장의 무게조차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이 느낄 정도로 쇠약해졌다.

아마도 16주까지 입덧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며칠 사이로 입덧이 기적처럼 가라앉았다.

그 후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한 달 즈음 지나자 배 속에서 뭐가 퉁~하고 움직였다.

첫 태동이었다.

‘나는 여기에 잘 있어요.’ 신고라도 하듯이.

첫 태동의 감격은 오로지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태동이 아빠인 남편의 즐거움이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한참 더 걸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 태동이 아니라 태내스포츠가 되어갔다.

내가 태교에 들인 정성은 21세기에 신사임당이 다시 태어났어야 마땅했지만,

그러나 뱃속의 아이는 축구를 하는지 야구를 하는지 알 수 없게끔

내 옆구리를 발로 찼다가 나의 복벽에 대고 주먹질을 해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갑자기 얻어맞고서 나는 억! 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

이에 비해 둘째 아이는 너무 얌전히 지내는 편이었다.

두 아이가 이런 점에서 많이 달랐다.  

   

큰애는 지금 임신 22주 차 임산부다.

얼마 전에 첫 태동이 있었고, 요즘은 가끔 느끼는 것 같다.

사위도 그들의 첫아이가 보내는 태동을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배에 손을 대면 태아가 조용해져 버려 아쉬움만 남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제 아침,

사위는 딸의 배에 귀를 대고 태아의 심장박동소리라도 들어보려고 했단다.

집중하고 있는 바로 그때

갑자기 사위가 귓방망이를 얻어맞았다.

심장박동소리는 들을 것도 없이 태동을 직접 느꼈다고! ㅎㅎ

소 눈보다 큰 눈을 가진 사위는 눈동자를 뚱그렇게 굴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 벌써부터? 이건 아닌데 싶었어요.’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우린 한참이나 깔깔깔 웃었다.

모쪼록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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