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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맛은 옛날사람이 아니다!

-구닥다리 식습관의 변화-

by 뚜와소나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던 나는

내 또래들에 비해 유난히 구닥다리 습성을 많이 가졌다.

그중에서도 식습관은 조부모님 영향으로 더 유난스러웠다.

나는 국 없는 식사를 잘하지 못했다.

수저 옆에 밥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이가 빠진 그릇을 보듯이 왠지 불편했다.


식사는 하루 세 번 꼭 해야 되고, 간식거리도 늘 냉장고에 있어야 했다.


게다가 김치류를 제외하곤 매번 새로운 반찬을 만들었다.

아침에 먹은 반찬을 점심에 그대로 다시 상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같은 반찬을 그대로 올린다는 건 주부의 게으르고 무성의한 태도라 여겼다.

더듬어보니 나는 비빔밥이나 잔치국수를 결혼 전엔 먹어본 기억이 없다.

밥과 여러 반찬을 섞어 먹는 식사법을 친정할머니께서 몹시 싫어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사는 동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나 돼지들이 먹는 방식이라면서 힐난하셨다.

심지어 TV광고를 보고 엄마가 만드신 카레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개가 먹다가 토해낸 것 같다.’

그날 나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흐르는 긴장에 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자랐겠는가?

옛날사람 중에서도 아주 옛날사람처럼 자랐다.

그러다가 예과 1학년 늦가을 즈음

첫 일탈로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오뎅)을 서서 먹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장소에서 제대로 차려놓고 먹는 음식이 아닌’ 것을 먹어봤다.


당시 사귀던 이에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길에서 파는 음식을 사 먹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이젠 나도 성인이 됐으니 시도해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 후 30년 이상 그는 나와 같이 살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나의 옛날사람 식습관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피차일반이었다. 자연인같이 먹는 그의 식사법에 나 역시 적응이 어려웠다.


‘점심에 먹은 김치찌개 더 없어?’라며 저녁에 새로 만든 된장국을 소 닭 보듯 하면

나는 내 성의를 냉대하는 것 같아 서운하기까지 했다.

남편은 단지 맛있게 먹은 그 국을 또 한 번 먹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외국에서 잠깐 생활을 하고,

나도 가끔 여러 나라에 나가 길게 혹은 짧게 돌아다니면서

하숙생활 10년으로 잃어버린 혀의 정체성에다 외국물까지 더해져

식습관이 조금씩 바뀌어갔다.


이제 나의 입맛은 더 이상 옛날사람이 아니다.

아침식사는 15년 전부터 삶은 달걀. 샐러드, 빵과 요구르트, 커피 한잔으로 일정하다.

점심은 국 없이도 반찬 대여섯 가지 놓고 먹을 수 있게 됐고,

저녁은 고기반찬을 새로 만들어서 푸짐하게 잘 먹는다.

남편이 좋아하는 국은 두세 끼니 먹을 정도로 충분히 해둔다.


베이징에서 비둘기구이와 거북이탕을 먹었고

베네치아에선 모닝빵에다 엔쵸비를 넣은 간식을 먹었으며

일본에서는 속이 울렁거리게 달달한 음식들을 차려주는 대로 먹었다.

향수 냄새나는 동남아음식도 먹었고,

염분에 푹 적신 지중해식 식사도 군말 없이 먹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도 많았다!


혀가 경험하는 세계가 넓어지고,

가족의 취향을 존중하면서부턴 나의 식습관도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예전에 큰 이모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스웨덴에서 사는 동안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빵을 먹어도 배가 부르더라.’...

그때 큰이모 연세가 82세였다.

어쩌면 내가 버리지 못한 식습관은

‘어린 시절 추억’을 놓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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