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우리 집 뒤 양지바른 언덕은
겨울을 지내야 하는 노숙자(거지)들의 공터였다.
양푼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주전자에 꽉 채운 시래깃국을
거지들에게 갖다 주라며
겁 많은 초등학생인 내 손에 들려주셨던 우리 할머니.
나는 양푼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오른 팔로는 주전자를 최대한 몸에서 멀리 떼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비탈길을 올라갔다.
주전자 주둥이로 뜨거운 국이 쏟아질까 조바심을 내면서.
어떤 해엔 이불을 갖다 주기도 했는데,
이(기생충의 일종)가 말도 못 하게 붙어있어서
다음 해 봄 거지가 떠난 후에 바로 태워야 했다.
그건 세탁이나 소독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는 이런저런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할머니께서 거지들에게 새 이불을 주지 않고 헌 이불을 내주시는 것이 그저 야속했다.
우리가 쓰던 낡은 이불을 내주는 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밥과 국은 늘 새로 해주면서 왜 이불은 헌 것을 주시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할머니의 성품은
때론 너무 냉철하여 겨울 같았고,
때론 그 깊이와 살아온 세월을 알 수 없는
양지바른 언덕 같기도 하셨다.
한 번은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나타난 거지가 있었다.
할머니께서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었다.
몇 년간 밥 심부름을 내게 맡기고서
거지들의 동태에 관해 이모저모를 물어보시던 할머니께서
이번에는 웬일로 직접 언덕에 올라가셨다.
할머니는 키도 크고 뚱뚱하고 고혈압과 심장비대로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숨차 하셨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다녀오셔서는 혀를 끌끌 찼다.
무슨 얘길 하고 오셨는지 여쭤보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이들이 학교 다녀야 할 나이가 된 것 같은데
애들마저 당신 따라 거지 생활을 하면 어찌 되겠냐?
애들은 당분간 내가 맡아서 돌봐줄 테니,
그 사이 읍에서 일자리를 좀 찾아봐서 삯월세방이라도 얻으면 어떻겠느냐? 한번 생각해봐라.'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며칠 후에 보니
그 거지 가족은 이른 새벽에 언덕을 조용히 떠나버렸는지
내가 일어났을 땐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 일을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언덕에 잠깐 머물던 이들 중에는 떠날 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저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가기도 했다.
새로 온 거지도 있었고
작년에 왔던 거지가 올해 또 오기도 했다.
할머니와 나는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왔었던 거지 아비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에미 없는 자식들'이라던 할머니의 표정이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