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로 이사온지 두달이 됐다.
40년전 시골에 살았을 때보다 더 시골스런 동네로 이사를 했다.
새벽 5시 45분, 마을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부엌의 물 끓이는 소리와 스피커의 잡음이 섞여 도통 알아듣기 힘들었다.
한 번만 말씀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되어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역시나 재방이 바로 이어졌다.
‘마을회관... 낫이나 호미 들고.... 6시까지...’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웅웅 거리는 잡음이 섞여 나왔다.
나는 세 번째 방송까지 듣고서야 확실히 알아들었다.
‘오늘은 마을회관 주변 대청소하는 날이니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낫이나 호미를 챙겨서 6시까지 회관 앞으로 꼭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일찍 잠에서 깼지만, 책 읽느라 밖에서 나는 소리에 관심이 없었다.
또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 탓에 왠만하면 마을 사람들 만나기를 꺼렸다.
나는 '우리 집을 대표하여 혼자 씩씩하게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후다닥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나 먼저 먹었다.
그리고 남편의 아침상을 따로 차려놓았다.
욕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잠옷을 벗고 몸뻬로 갈아입었다.
나름 서두른다고 했지만 6시가 넘어버렸고, 5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이장님께서 독촉 방송을 하셨다.
급한 마음에 나는 모자와 낫을 챙겨 들고 달려 나갔다.
내가 사는 곳은 동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옆동네까지만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거기서 우리 집 앞까지는 허연 시멘트 포장길이다.
이 시멘트 포장길에서 경운기를 만났다. 비켜준다고 잠시 서 있다가 또 달려갔다.
우리 집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 동네입구가 있고 이 주변으로 스무 가구 정도가 있는데,
다들 회관에 갔는지 좁은 골목에는 사람이 안보였다.
나만 늦게 가서 면목 없을 일이 문득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런데 마을회관에 가까이 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아무도 안보였기 때문이다.
차가 한 대 서 있었는데, 어젯밤부터 주차해놓았는지 엔진의 열을 느낄 수 없었다.
주변에 인기척 없음을 확인하고서 이 상황이 혼란스러워 멀뚱 거리다가
좀 전에 지나왔던 동네 어귀로 되돌아갔다.
마침 텃밭에 일하시는 아저씨 한 분을 발견한 나는
"‘아저씨, 오늘 마을회관 대청소 안 해요?’ 아까 방송 어찌 된 건가요?" 하며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빙구웃음을 지으면서
저쪽을 보라는 듯이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으로 맞은편 마을을 가리켰다.
"왼쪽 동네는 점봉2리, 오른쪽은 점봉4리, 가운데는 어쩌고~~
아까 나온 안내방송은 능현리 방송이 아니고 건너편 점봉리 방송이여. 여기도 다 들렸어~~"이러셨다.
어이쿠야!
새벽 6시부터 장화 신고 낫 들고 달려간 일이 창피해서 나는 쥐 죽은 듯이 귀가했다.
그리곤 마당에 난 잡초들을 붙잡고 세게 응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