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집으로 놀러 왔다.
내 친구 중의 반은 중고등학교 교사다.
대체로 직장생활 25년이 넘는 베테랑들이다.
어제 놀러 온 친구는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주기적으로 근무하는 학교가 바뀌는 것 같다.
이번에 새로 전근 간 학교에서는
제비뽑기로 담임을 정하는 룰이 있었다는데
수학선생님인 이 친구가 문과 남학생반 담임이 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하나 사이에 두고,
먼저 근무하던 저쪽 학교는 강북 8 학군,
이쪽 학교는 경찰서와 친한(?) 학군이라고....
주된 목표가
등교시간~하교시간까지 학생들을 별 사고 나지 않게 학교에 잡아두는 것이라 했다.
매일 한 두 번은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학생의 경찰서 출두시간을 적절히 조율하는데,
그 아이들이 받는 처벌은 주로는 벌금형과 훈방조치라 한다.
부모의 울타리 없이 사는 아이들도 많고,
있다 하더라도 한겨울에 홑껍데기 이불이나 다름없는 부모라 했다.
내 친구가 관찰하기에는 그래도 부모가 있는 편이 낫다 한다.
학기초부터 공부할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친구는
'야들한 테 수학이 뭔 소용이고?'싶었단다.
그러면서도
학업을 포기한 채로 살아가는 이 학생들의 고교 3년이 너무 안타까워서
수학을 그야말로 매우 쉽게 풀어서 가르치고 있나 보다.
기초가 너무 안되어 있어서 중학수학부터 개념을 조금씩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다 몇 명이 뒤늦게 수학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이 학생들에게
"너희들, 이따 수학 좀 따로 봐줄까?" 물어봤는데,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면서 그러겠다고 하여
그 학생들을 도서관 한쪽 방에 몇 명 모아 저녁 8~ 9시부터 개별적으로 다 봐준다고 한다.
학교에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이 학생들이 공부에 대해 완전히 좌절하지 않도록!
그 시간에 이상한 곳에서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않도록!
이런 작은 끈으로 어른과 사회에 대한 불신이 조금이나마 완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어휴! 피는 못 속인다고 하더니, 진짜 그런가 보다.
그 친구의 아버지도 그러셨다는데....
가난해서 배우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집 마당에다 칠판을 놓고 가르치셨다고 들었다.
낮엔 학교에 근무하시고 퇴근해서는 마당에서 전과목 수업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러다 결국 과로로 젊은 날에 돌아가셨다.
내 친구가 그대로 닮은 것 같다.
가르치는 재능과 열정을 타고났다.
체력도 좋다.
오래전 우리가 대학 학력고사를 본 직후,
나는 그 친구에게 의대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대학 졸업 후 어머니를 하루빨리 도와드려야 한다며
의대 대신 서울대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선택해서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자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선택한 길이라 여겨진다.
오히려 나는 나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여 의료인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
나는 어제 점심에
소고기를 굽고, 새우전, 닭고기 깻잎전, 연어회, 그리고 방아 낙지전으로 한 상 가득 차려서
존경스러운 내 친구와 둘이서 맛나게 식사를 했다. 행복했다.
이 일기를 쓴 지 5년이 지난 이번 여름에
나는 친구네 가족과 휴가를 같이 보냈다.
그 사이 갱년기를 겪으며 매사에 열정이 줄어든 것 같던 내 친구는
회춘하듯 다시 교육열을 내뿜고 있었다.
역시 타고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