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나는 평생교육원에서 양봉 수업을 받았다.
조경 수업을 신청하면 양봉 수업을 덤으로 받는 반강제적인 수강이었다.
가르치는 분의 역량이 뛰어나서인지 벌을 무서워하던 나는 양봉 수업에 뜻밖의 재미를 느꼈다.
연기를 피워 벌을 진정시킨 후 벌통을 열어 숫벌 제거 작업을 하고 꿀 따는 실습을 했다.
장화 신고 고무장갑을 끼고, 긴팔과 긴 바지에,
머리는 양봉 모자라 하여 머리와 얼굴을 어깨 부위까지 연결해 몽땅 가린 모자를 쓰고서
구부정한 자세로 일일이 벌집을 확인했다.
생각만 해도 허리가 아프다.
벌의 세계는 여왕벌, 숫벌, 일벌로 구성된 조직이 철저히 합리적으로 돌아간다.
조직의 핵심인 여왕벌이나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는 게 지상과제인 숫벌은 다 남의 얘기.
내 삶은 이를테면
벌집을 청소하고, 여왕벌이 낳은 알들을 데려다 키우며,
부지런히 꿀을 따오고, 몸이 부서져라 벌집을 건설하는 노역형 죄수, 바로 일벌이었다.
일벌의 수명은 짧다.
여왕벌이 5-6년 살고, 숫벌도 겨울 되기 전까지 수개월은 너끈히 사는데,
일벌은 평균 50일, 운 좋으면 최장 6개월 남짓 산다.
일벌에게도 팔자가 따로 있는 모양인지
겨울에 태어나면 하는 일 없이 비축해둔 꿀을 먹으며 이듬해 봄까지 6개월이나 살 수 있다.
하지만 꽃 피는 봄에 태어난 일벌은
태어나자마자부터 일에 치어 살다가 한 달 만에 죽기도 한다.
나는 겨울에 태어난 일벌과 비슷하고, 남편은 봄에 태어난 일벌과 닮았다.
남편의 집은 형편이 많이 어려웠다.
그래서 등록금 전액 면제라는 입학 장학생 조건으로
적성은 깡그리 무시된 채 소위 잘 나간다는 학과로 지방대에 진학했다.
그 결과 지극히 내성적이고 기계와 숫자, 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30년 이상 매일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쉰 살 넘어 건강에 위기가 찾아오자 남편은 공대에 가지 못한 걸 후회하며 자주 우울해했다.
둘째가 대학에 갈 무렵 한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그 무렵 나는 남편에게 ‘1-2년 내로 은퇴하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남편은 직장생활을 계속 고집했다.
“가장 역할을 못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수 십 년 간 하는 것보다 더 괴롭다”면서
“당신은 편히 자라서 내 맘을 모른다.”며 나를 타박했다.
3년이 지나도록 은퇴가 미뤄지던 어느 날,
세 든 빌딩의 주인이 바뀌면서 사무실 재계약이 불투명해졌다.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들을 다 내보내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나의 은퇴를 가족 앞에서 선언했다.
내가 먼저 은퇴를 해야 남편도 결심하기가 쉬울 것 같아서였다.
외부 상황이 녹록지 않다 보니 이번엔 남편이 은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근무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그 새 1년 반이 더 지났다.
나는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가드닝, 여행용 영어회화, 도배기능사 직업훈련을 받았고
양봉 수업을 들었다. 글쓰기 수업도 받았는데 예상보다 어려웠다.
보고서나 논문만 읽고 쓰다가 감상이 들어가는 수필을 쓴다는 게 낯설고 쉽지 않았다.
남편은 산책과 등산, 운동, 여행, 취미활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작년에는 늦가을까지 날씨가 포근했고, 벌들이 긴 시간 노역을 했다.
그 결과 올봄 벌의 2/3 가량이 줄었다. 잠시의 이익과 큰 손해가 이어졌다.
꽃과 과일나무, 야채 등은 누가 수정시켜 번성하게 할 것인가?
기후변화가 교란을 일으켜 벌들도 길을 잃고, 자연계 회복에도 어려움이 큰 듯싶다.
올 가을엔 기후가 적당하여
때에 맞게 그들이 벌통으로 돌아가고
비축해둔 꿀과 월동 사양으로 겨울을 편안히 지내기를 바란다.
다시 꽃 피울 봄을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