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의 추억

by 뚜와소나무

일단 이 얘기는 곗돈 받고 튄 계주 얘기가 아니다.


중학교 이후로 나는

우리 반과 학년을 대표하는 릴레이 주자였다.

가을 운동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종목이라서 마지막에 전 학년의 응원을 받곤 했다.

중3 때 나는 경상남도 대표가 될 후보 선수를 뽑는 예선전에 출전했다.

이 대회를 앞둔 한 달 전부턴 오후 수업을 빼먹고 세 명의 친구들과 운동장 생활을 하게 됐다.

체육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달리는 기술, 자세, 호흡조절, 경기규칙, 속도조절 등을 반복해서 열심히 가르치셨는데,

나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

신발 바닥이 축구화처럼 울퉁불퉁한 스파이크를 신는 게 마냥 좋았다.

또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닭장 같은 교실에서 수업 중인 선생님과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묘한 기분도 들었다.

훈련 중인 나를 보시면서 어떤 선생님들은

"쟈~아가(쟤가 사투리) 진주로 고등학교 가야 되는데, 공부 대신 저게 뭐하는 짓이고!"

하면서 못마땅해하셨다.

나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면서 다리와 손목을 풀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연습했지만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4등으로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그때 집중해서 지도받은 달리기 기술의 효과는

25년간 학급, 학년, 학교, 직장, 소속 단체를 대표해 계주 선수로 뛸 때마다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몇 년 전 여고 동창들의 연말 모임에서 우연히 계주 얘기가 나왔다.

여러 친구들이 ‘바람을 가르고 비호처럼 달렸던 네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 친구는 내가 달리는 모습이 마치

'체육 교과서에 사람이 튀어나와 그대로 달리는 것 같았다.'라고 했다.

이 얘기를 한 친구도, 또 재활의학과 의사가 된 다른 친구도 각자 자기 반대표 계주 선수였다.

달리기 훈련을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달리는지는 나만 모른다.

하여간 인상적이라는 얘기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마냥 잘할 줄만 알았던 계주에서의 자신감이

자궁적출술을 받고 나서 무너져 버렸다.

첫째 아이 운동회 때는 수술 전이라 학부모 대표로 나가 잘 달렸는데

수술 후 둘째 아이 운동회에선 어인 일인지 예전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후 두세 번 더 달려보았으나

다른 사람보다 조금 빠를 뿐이지 예전처럼 눈에 확 뜨이는 특별함이 사라져 버렸고,

그건 회복불능이었다.


그 후론 계주 선수를 찾는다고 누가 애타게 둘러보아도 시선을 외면한다.

마주쳐도 '못 뛴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욕심껏 뛰고 나면 아랫배가 심하게 뭉치고 일주일간 방광염을 앓으니까 피하게 된다.

숨이 차면서도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청량함, 카타르시스를

이제 더는 느낄 수 없고 힘이 들뿐이다.

후유증까지 그야말로 원 플러스 원이 되어 돌아온다.

오랫동안 즐거운 추억을 갖게 해 준 계주가 생각나면

나는 가끔 유튜브에 올라온 계주 동영상들을 본다.

달리는 그들 뒤로 내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음만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람 속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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