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재수생을 둔 엄마였다. 큰애에 이어 작은애도 재수를 했다.
4년간 내리 고3. 재수, 또 고3, 재수, 이렇게 수험생 부모 노릇을 하다 보니
삶의 질이 떨어졌다.
아이들도, 부모인 우리도 자주 긴장하며 살았다.
그나마 내 친구에 비하면 조금 낫긴 했다.
그 친구는 3남매를 두었는데, 5년째 수험생 부모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생에 나보다 조금 더 죄를 많이 지었나 보다.
그 친구는 부업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간신히 울화를 삭이는 것 같았다.
하루는 지인과 통화를 하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있어야 된다.’는 얘길 들었다. 맞는 말이다.
고3 시절 나는 모교인 진주여고 앞에서 버스를 타고 수험장인 삼현여고로 갔다.
국어가 좀 어렵기는 했지만 2교시 수학시험을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내심 흡족했다.
‘서울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겠구나.’하면서 안도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같은 학교에서 온 친구와 둘이 식사를 하게 됐다.
하숙생이던 나는 보온밥통에 점심을 싸왔고,
자취생이던 그 친구는 플라스틱 도시락통에 김밥을 싸왔다.
내가 “OO아, 밥이 차갑지 않아?”물었더니 그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아침에 눈발이 날렸고 하늘은 잿빛에다 손도 시린지라
나는 그 친구의 도시락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나 김밥 좋아하니까 3개만 주라.”라고 했다.
그리고 따뜻한 내 밥을 푹 떠서 그 친구에게 건네줬다.
역시 짐작대로였다. 김밥은 차고 단단해서 자갈 씹는 듯했다.
하지만 친구가 민망해할까 봐 “맛있네.”하며 목에 힘주어 꾹 삼켰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영어시험이 시작됐다. 나는 평소대로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문제를 몇 개 풀다가 ‘다음 문제를 읽고..............’ 뚝!
다시 또 읽었는데 ‘다음 문제를 읽고................’ 뚝!
이러기를 몇 차례 반복했던 것만 기억난다. 체해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감독하시는 선생님의 “5분 남았습니다! 정리하세요.” 하는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적을 깨고 들어온 그 목소리의 파편들이 내 머리에 콰광하고 부딪혔다.
눈을 뜬 순간부터 혼비백산이 되어 심장은 미친 듯이 방망이질 해댔고,
그 와중에 일단 빛의 속도로 문제를 읽고 답을 써 내려갔다.
두세 문제 풀고 나니 1분이 휙 지나버렸다. 그때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래 가지고는 남은 시간에 열 문제도 못 푼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OMR 답안지의 빈칸을 훑어봤다.
눈물이 차올랐다. 대부분의 칸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4분의 1(25%)이라도 건져야 해!‘
나는 일단 시험지를 덮었다.
그리고 답안지 빈칸에 1111, 2222, 3333,4444, 다시 1111, 2222 순서로 마킹을 했다.
결국 내 성적으로는 서울대에서 갈 수 있는 학과가 몇 개 밖에 없었다.
워낙 큰 사고를 쳐놔서 그런지
나는 부모님께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고, 재수시켜 달라는 말도 차마 하지 못했다.
내 고백에 지인이 킥킥 웃으며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도 역시 영어 문제 몇 개 풀다가 잠이 들었다고 했다.
학력고사 본다고 정성 들여 해주신 어머니의 찰. 밥. 때. 문. 에 체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등을 두드려서 놀라 깼다.
시험 감독관이 조용히
‘학생,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야지!’하며 깨웠다는 거다.
시계를 보니 잠든 지 대략 5분밖에 안 지났기에
황급히 정신줄 챙겨 영어시험도 잘 봐서 무난히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고 했다.
그는 법무법인 태평양에 근무하고 있다.
나 같이 한심한 학생이 어디에 또 있겠나 싶었지만 가까운 거리에 또 한 명 있을 줄이야!
나는 우리 아이들이 시험을 못 봐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잠들지 않고 열심히 문제를 푼 것만 해도 다행이고
속이 상해도 본인이 더 상하지 내가 더 상하겠나 싶어서였다.
부족한 부분을 본인들이 알아서 보충할 계획을 세우면, 나는 카드결제만 했다.
하여간 수능생 부모님들은
평소 소화가 잘되고 익숙한 음식으로 수능날 도시락을 따뜻하게 준비하면 좋겠다.
예민하고 불안한 학생들은 평소에 먹던 밥과 반찬도 소화장애를 일으키니 말이다.
그리고 실력에 행운이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거나 간에
이건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학력고사(수능) 망했다고 내 인생이 망했던가?
그 당시엔 망한 줄 알았다.
시험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공허함과 비탄에 젖어
버스를 타지 않고 터덜터덜 남강 강변을 2시간 동안 걸어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그리하고도 자책과 울분을 견디지 못해 책상 위의 모든 교과서를 하숙집 마당에서 태워버리긴 했다.
하지만 긴 삶에서 그 시간은 찰나와 같이 지나갔고,
하기 나름인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