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1학년 때의 일이다.
본초 실습시간에는 의례 조교가 나눠주는 한약재들을 관찰하고,
맛도 보고 냄새도 맡아 꼼꼼히 기록한다.
하루는 파두가 나왔는데,
파두는 심한 설사를 일으키기로 유명하고 독성 성분이 있어서
다들 맛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외형 관찰만 했다.
그런데 동기 중 한 명이 실습에 사용된 파두를 반납하지 않고,
몇 알을 몰래 호주머니에 넣어서 하숙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는 같은 하숙집에 사는 예과 1학년 후배에게
마치 남자에게 무척 좋은 약재 인양 거짓부렁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은근히 자리를 비우는 척하면서 “나 없을 때 먹으면 안 돼!”주의까지 줬다고 한다.
잔뜩 호기심이 서린 후배는 본 1 선배가 나가자마자 한알을 꿀꺽 삼켰다.
잠시 뒤 아무 반응이 없자 또 하나를 삼켰고,
얼마 지나도 선배가 들어오지 않자
‘나중에 오면 양해를 구하지 뭐.’ 이러면서 남은 파두들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로부터 후배는 화장실을 10초 단위로 왔다 갔다고 한다.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래로 쏟자 덜컥 겁이 난 하숙집 선배들은
급하게 동네에서 리어카를 빌려 후배를 싣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위세척을 하고,
링거를 꽂고 있는 중에도 바지를 못 입을 정도로 좍좍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후배가 죽을 뻔했다가 살아 돌아온 일로 다음날 학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본초는 보통 한약재를 말하는데,
신농씨가 본초학의 선구자로 기록되어 있다.
신농씨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인물로 머리는 소, 몸은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여러 식물을 먹으면서 죽었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아마 독초도 먹고, 약초도 먹고 그랬나 보다.
이 얘기는 인간이 약을 발견하는 과정의
무수한 try & error 역사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다.
파두를 기어이 갖고 간 동기나 몰래 꿀꺽한 후배나
신농씨 후계자 자격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