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과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나는 병리학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인근에 있는 A국립대학병원 해부병리학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서울, 경기도에서부터 전라남도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 거점대학병원(주로 국립대학 부속병원) 한 곳을 지정하여 1차 부검 기관으로 운영했다.
사망한 사람에게서 적출한 일부 장기들과 1차 부검의 소견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 보내졌다.
내가 처음 참관한 부검은 형사 사건과 의료사고 소송의 사망자들이었다.
참관 전 나는 법의학 교과서를 여러 번 읽고 부검 절차를 머릿속에 미리 외워뒀다.
부검을 총괄하시는 교수님 지도하에 수련의 두 명이 집도했다.
사망자 유족 측에서 한두 분, 형사가 두 분 입회했다.
부검 절차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거의 진행되었다.
첫 번째 부검한 시신은 남자 중학생이었다.
소년은 점심을 먹은 직후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선배들을 만나 몇 대 맞았는데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입회한 유족은 소년의 아버지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부검 시작하기 전부터 눈이 충혈되어있었다.
울어서가 아니라 며칠 째 잠을 못 잔 것 같은 눈이었었다.
부검이 시작되자 아들의 시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더욱 비장해졌다.
하얀 공막에는 선명한 핏발이 서 있었고 까만 눈동자는 섬뜩할 정도로 광이 났다.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소년의 몸에 약간의 멍자국이 있었을 뿐이었다.
머리부터 가슴 배, 등, 팔다리, 발바닥까지 다 검시를 했으나 맞은 흔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외형 관찰이 끝나고
쇄골 부위 근처에서부터 T자 해부가 시작되었다.
가슴과 복부를 열어 심장, 폐, 간, 위, 비장, 장 등 기본적인 장기를 다 살펴보고
일부 장기들은 조금씩 잘라 각각 따로 담았다.
안쪽 흉벽을 살펴보았을 때
겉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출혈 흔적이 점상으로 조금 보였는데, 역시 특별하진 않았다.
육안으로는 간파열이 관찰되지 않았으나 조금 잘라내어 비커에 담았다.
부검이 꽤 진행될 때까지 소년의 사망원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교수님께서 수련의들에게 기관지를 절개해보도록 명령하셨다.
수련의가 메스로 기관지를 절개하자 거기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다.
음식물이었다.
기관지는 다들 알다시피 쉼 쉬는 통로인데, 그곳이 음식으로 꽉 막혀 있었다.
추정되는 사망 경위는 이러했다.
누군가로부터 복부를 가격 당했고,
그 압력에 의해 위장에 잔뜩 들어있던 음식이 거꾸로 올라와
식도와 인후를 통과해 일부가 기관지로 넘어가서 숨 쉴 공간을 막아버려 순식간에 질식사한 것이었다.
부검을 마친 교수님은 형사와 보호자에게 부검 결과를 간단히 설명하고 보고서를 썼다.
그리고 국과수로 보내기 위한 장기들을 작은 가방처럼 세팅된 냉동장치에 넣었다.
이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 가족, 가해자, 가해자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각 사람의 입장을 거듭 생각해 볼 뿐이었다.
부검 과정을 주시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소년의 아버지는
그날의 고통을 눈에 아로새긴 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신이 계신다면 그분의 자비를 구할 따름이다.
두 번째 부검은 의료사고 소송건이었다.
돌아가신 분은 80대 할머니였고,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분의 맏아들이 보호자 대표로 입회했다.
그러나 막상 부검이 시작되자 보호자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부검 과정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마칠 때까지 간간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병원과 갈등하는 사이에 할머니의 시신은 얼마간 방치되었다.
7월이라 부패가 빨리 진행되어 냄새가 심했다.
예과 2학년 때 했던 해부실습 시신 네 구는
약품처리와 냉동보관으로 그리 역하지 않았는데,
방치되었던 할머니 시신은 확연히 달랐다.
역시 T자 절개를 하고 여러 장기들을 살펴봤다.
할머니는 평생 담배를 피신 적이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흡연으로 인해
할머니의 폐는 후춧가루를 다다다다 뿌려놓은 것처럼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정상적인 폐는 연분홍색에 가까운데 말이다.
내 예상으로는 내장이 가장 먼저 부패하고 냄새도 심할 것 같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순두부 같던 뇌에서 심각한 냄새가 났다.
마스크를 쓰고 무표정하던 수련의들조차 순간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할머니의 사망원인은 뇌까지 해부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개인병원에서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잘 회복하던 중에 주무시다 돌아가셨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혈전에 의한 뇌경색으로 추정되었다.
입회한 보호자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냄새로 기억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참 슬픈 일일 것이다.
부검을 마치자 담당교수님은 부검 결과를 간단히 보호자와 형사들에게 설명하고
국과수로 보낼 보고서와 냉동 가방을 준비하셨다.
부검을 마친 시신들은 수련의들이 수술용 바늘로 크게 크게 꿰매어 예를 갖춰서 뒷마무리를 했다.
메스로 직접 해부 실습했을 때나 부검 참관을 했을 때나
나는 평소처럼 식사하고 잠을 잤다.
의료인이 되는 교육과정에 누구나 겪는 일로 여겼을 뿐이라서
조용히 실신을 한다든지 구역질을 한다든지 실습 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내 손은 해부 실습할 때 의대교수님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섬세하고 빨랐는데,
의사인 내 사촌들의 전공분야를 보니 다들 비슷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의대 졸업 후 법의학 분야를 전공하기 위한 새로운 선택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결혼을 안 했더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남편은 내가 법의학을 전공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치 않았고,
사법고시를 보라고 여러 번 권했다.
몇 장 안 되는 의료법조차 국가고시를 보느라고 마지못해 공부했던 나에게
사법고시가 웬 말인가?
결국 그 두 가지 길 모두 내 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법의학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주신 교수님과
참관을 허락해주신 교수님께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다.
한 분은 일찍 고인이 되셨다.
그분이 입원하셨던 병원에 두어 번 다녀왔을 때조차 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다.
살면서 후회가 되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