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날이 추웠다.
나는 지인과 같이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강남의 빌딩 숲 어느 건물 안쪽 의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중간은 복도였는데, 거기엔 공짜로 나눠주는 커피와 일회용 컵들이 쌓여 있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 때리고 있을 때
한 여자가 건물 안으로 조용히 들어와 셀프서비스로 그 커피를 가져갔다.
그러다 내 앞 3m쯤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로 홱 돌아섰다.
이어 생판 모르는 나에게 "커피가 별로 뜨겁지가 않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커피를 마시지 않아 온도가 어떤지 몰랐고 커피를 제공한 주최도 아니었지만
그 공간에 우리 둘 밖에 없음을 깨닫고서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제야 내 눈에 그 여인의 행색이 들어왔다.
이 겨울에 그녀는 7부 길이의 여름바지를 입었고,
발에는 삼디다스 슬리퍼를 신었는데 심지어 맨발이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더니만 그녀는 나를 보고서 뒤로 몇 걸음질 했다.
그리곤 발이 시렸는지 왼발로 오른쪽 종아리를 비비고, 오른발로 왼쪽 종아리를 비볐다.
나는 내 신발을 봤다. 겉은 가죽이고 안에는 털이 붙어있었다.
게다가 양말은 등산양말이라 두툼했다.
등산양말이라도 벗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쪽 신발 끈을 풀고 양말을 후다닥 벗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 여인은 옆 건물로 90도 꺾어지며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뭐라고 불러 세워야 할지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고,
나는 반 즈음 벗은 다른 쪽 양말마저 벗고 신발을 대충 신은 채 허둥지둥 뒤따라갔다.
하지만 늦었다.
불과 1-2분 사이에 그녀를 빌딩 숲 속에서 놓쳐버렸다.
내내 후회가 되었다.
'나는 왜 맨발의 여자를 보는 즉시 말부터 건네지 않았을까?
말이라도 걸었으면 그 사이 양말 줄 시간이 있었을 텐데.' 자책이 되었다.
그녀는 추위를 녹이려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찾아
낯선 이곳에 들어왔을 터인데
하필 커피는 뜨겁지 않았고, 나는 양말을 벗어주지 못했다.
이렇게 때늦은 후회를 할 일이 어쩌다 한 번씩 생기면
며칠 동안 그 장면이 눈에 계속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