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진료예약 상황을 보니 한 시간이 비어 있었다.
나는 지능검사를 받아보겠다고 임상심리사에게 급히 연락했다.
그때 내 나이 37세였다.
보름 전에 남편이 지능검사를 포함한 심리평가를 받았던 지라
나도 나 자신이 궁금했고,
남편보다는 조금 높게 나오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일중독자로 살던 그 시절의 나는 단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예약이 비어있는 그 시간을 이렇게라도 알뜰히 사용하고 싶었다.
지능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보통 1시간 15분 정도니까
서두르면 1시간 내에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나치게 서둘렀는지
그날 나는 45분 만에 지능검사를 끝내고 진료실로 돌아왔다.
막상 지능검사를 받고 나자
‘내가 혹시 바보인가?’ 하는 의구심이 슬쩍 들었다.
검사받는 중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머릿속이 뒤엉켜졌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할 정보를
시냅스가 뚝뚝 끊어지는 듯이 비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걸 자각했을 정도였다.
아마도 지능검사를 1:1로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내가 하는 말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하여간 시작은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나중엔 고양이 앞에 쥐가 되었다.
이러다가 IQ 100이 안 나오는 게 아닐까?
나중에 결과지를 받아보니,
역시나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140을 넘지 못했다.
충격적 이게도 남편보다 전체 지능지수에서 2가 낮았다.
의미 없는 차이인 줄은 알고 있지만,
숫자가 그리 나왔으니 표면적으로라도 깨갱하고 살아야 하나 잠시 갈등했다.
'앞으로는 잘난 척을 말아야지.
세상에 똑똑한 놈들이 그렇게 많은데... 난 대체 머꼬!' 싶었다.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산 것을 반성했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점은
남편과 내가 매우 이질적인 장점과 약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소항목 별 원점수와 환산점수를 보니
남편의 최대 강점이 나의 최대 약점이고,
나의 최대 장점이 남편의 쥐약이었다.
결혼생활을 통해 우리가 서로의 약점을 커버하며 살고 있다는 정도는 알았지만
이렇게 신경학적인 기초가 다를 줄이야.
성격검사나 정서검사보다 지능검사의 소항목들을 살펴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일이 생기면 나는 남편에게 물어본다.
"이 문제의 본질이 뭐야? “
그리고 일이 어디로 흘러갈지 파악이 안 되면 남편이 내게 물어본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전개될 것 같아?”
우리 부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 협력하는 자세로 이인삼각 경기를 계속하고 있다.
지능검사를 받는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하다.
성격이나 정서검사와는 또 다른 차원의 현타가 오기 때문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와도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고서에 적힌 걸 보면 실망할 가능성이 대체로 높지만,
객관적인 지표들이 말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면 할수록 이롭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여러 방법 중
신경학적인 특성을 잘 이해하는 데는 지능검사만 한 검사도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지능검사와 적성검사의 교집합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뇌에서 제일 잘하는 기능과 자기가 하고 싶은 게 겹치는 분야의 일을 선택하는 게 낫지
신통찮은 신경기능을 하는 분야에다 하고 싶지 않은 걸 직업으로 삼는 게 말이 되는가?
잠깐 동안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또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가 주어지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적응하며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제일 좋은 선택은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더욱 갈고닦는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이다.
정서검사, 성격검사, 적성검사도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중 나침반이 있다면 그것은 지능검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