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독신은 아무나 하나?

by 뚜와소나무

예전에 양한방 협진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다.

2층 복도 맞은편에 있는 산부인과 과장님과 친해져 종종 퇴근 후 같이 어울렸다.

그분은 산사춘이라는 술을 좋아했고, 나는 술에 약해 안주류를 즐겼다.

우린 각자 그 병원을 떠난 후에도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따로 만나 한 번씩 회포를 풀었다.

그분을 좋아했던 남자는 외과의사로 지방에 살고 있었다.

그 외과의사는 오랜 세월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나이 40 넘어 결혼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속눈썹이 중동 사람만큼 긴 어느 집 늦둥이가 있었다.

미인으로 소문난 누나와 큰 형은 대학생이었고, 둘째형이 고2였을 때

그 애와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늙은 아버지는 세 아들 중 자신과 판박이인 막내를 엄청 사랑하셨다.

하지만 고혈압이 늙은 아버지를 쓰러뜨렸고, 가세가 빠른 속도로 기울었다.

나는 걔네 집이 부잣집에서 판잣집 신세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다.

그 애 엄마와 우리 엄마가 오래전부터 친했기 때문에 형편을 대강 알고 있었다.

멀리서 가끔 나를 보면서도 너무나 내성적이던 그 애는 내게 말을 건네는 적이 없었다.

내가 다가가면 옆으로 살짝 비키면서 시선을 피하는 게 전부였다.

여고 다닐 때 한 번은 우리 엄마가 그 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게 물어보셨다.

나는 남 말하듯이 “그 애는 좋은 남편, 훌륭한 아빠가 될 성품이에요.”라고 무심히 답했다.

그 뒤 그 애의 엄마가 나를 위해 두어 번 김밥을 정성 들여 싸서 보내주신 일이 있었다.

우리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방학 동안 나는 부모님의 가게 일을 잠깐씩 도왔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왔다.

나는 계산을 하려다 말고 그 친구 눈을 보며 미소를 띤 채 “안녕!”하고 인사했다.

하지만 그 앤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대꾸도 않고 시선도 피한 채 뻣뻣이 영수증만 받고 휘리릭 가버렸다.

나는 속으로 ‘뭐야? 내가 인사를 건넸는데... 외면했잖아!’라며 괘씸해했다.

며칠 후 우리 엄마가 ‘그 애를 한번 만나보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가차 없이 거절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후 내가 첫애를 낳을 무렵 우리 집에 친정 할머니와 엄마가 다녀가셨다.

그때 엄마가 뜬금없이 이 얘길 하셨다.

“OO이가 몇 달 전에 많이 울었다더라. 그 애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대.”

“네? 왜 울었대요?”

“OO 이는 네가 결혼했는지 전혀 몰랐던가 봐.

집에 내려와서는 이제 너랑 결혼할 준비가 됐다고 부모님에게 용기 내서 말하더래.

그 애 엄마가 ‘지금 와서 이 얘길 하면 어떡하니! 두 달 전에 oo이 결혼했는데.’라 말했더니만

그 자리에서 얼이 빠져 있다가 이틀 내내 울기만 했대. “

세상에나! 사귀기는커녕 단둘이 5분 이상 얘기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무슨 결혼을?

나는 친정엄마에게 “그 얘기를 뭐 하러 저한테 하세요!”라며 막 웃었다.

아마도 두 어머니들은 우리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은밀한 기대를 안고 바라보셨나 보다.


하지만 운명은 진작부터 평행선 궤도에 올라가 있었다.


다시 몇 년 후

나는 A연구소에 발령이 난 시동생 일로

그 연구소에 오래 근무한 이 친구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여의도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연구소 내부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묻고 들었다.


식사 마치고 차를 마실 때에야 사담을 나눌 여유가 있었다.

그 애는 독신으로 사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 했다.

또 앞으로도 독신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못 들은 척했다.

그리고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섰다.


나는 그 애가 우리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걸 극구 사양하고

여의도에서 사당역까지만 부탁한다고 했다.

그의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그 애가 ‘악수나 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악수했다.

그런데 그 애는 악수한 내 손을 꽉 잡고서 한참을 놓지 못했다.

뭔가를 말할 듯 말 듯하더니 끝내 대학생 때처럼 아무 말을 못 하고 있다가

운전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애의 긴 속눈썹 아래로 차오른 눈물을 보았다.

나는 ‘가야겠다. 또 봐.’ 하며 손을 빼고 차에서 내렸다.


40대 중반 어느 날 시골 동창으로부터 그 애의 소식을 들었다.

외국에서 2년 전에 결혼했으며 연년생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한편으론 홀가분함이,

다른 한편으론 그 친구가 끝까지 순정남으로 남을 수 없음에 대한 왠지 모를 서운함이

교차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났다.

나는 책갈피에 끼워둔 꽃을 보며 생각한다.

‘OO아. 고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줘서 고맙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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