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어떤 할머니에게 들었다.
어느 날 문득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산 자신의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단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보겠노라며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5만 원짜리로 천만 원을 찾아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제일 먼저 간 곳은 강남의 모 백화점, 해외 명품 코너였다.
300만 원짜리 옷을 걸쳐보았다. 이 옷 저 옷 또 다른 옷도...
그런데 거울 속 여인의 모습이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젊어서는 옷이 날개라 괜찮은 옷을 걸치면 사람도 덩달아 괜찮아지더니만
나이 70이 넘으니 옷을 바꿔도 거울 속엔 웬 노인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옷을 내려두고, 이번엔 구두매장으로 갔다.
이 구두, 저 구두... 구두를 둘러보는데 다들 디자인이 훌륭했다.
그런데 젠장!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수술, 고관절도 수술받은 터라
7cm가 넘는 굽의 구두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녀가 신을 수 있는 구두의 굽은 3cm 이하여야 했기에...
이번에는 가방 매장으로 달려갔다.
악어백, 타조백 등 웬만하면 700만 원이 넘는 가방들이었다.
하지만 그 가방들은 가볍지 않았다.
70대가 되기 전부터 흔히들 조금이라도 무거운 가방은 어깨가 아파서 피하게 된다.
잠깐 들어보고선 머릿속으로 천 가방으로 유명한 Les*****이 떠올랐다고 한다.
가방도 도로 내려놨다.
(이 분이 몇 년 후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은 걸 보면 이때 잘 생각한 것임)
가방에 현금 천만 원을 넣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백화점 명품관을 유랑민처럼 떠돌다가
결국 하나도 못 사고,
오후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 두 권 사서 귀가한 게 전부였다.
그 돈의 상당액은 형편이 어려운 여러 기관에 후원금으로 보내며, 가치 있게 썼다고 내게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술집 마담이
암 진단을 받고 나서
그녀도 현금 천만 원을 찾아 백화점으로 갔다.
그리곤 평소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자기 형제자매들에게 이불을 한 채씩 사서 보냈다.
왜 굳이 이불이었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어렵게 자라온 형제자매들의 옛정을 생각하며,
따뜻한 이불로라도 덮어주고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 일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
형제자매들과 관계가 회복되었다.
다행히 수술과 항암치료 경과도 좋아서
지금은 서로 살뜰히 챙기며 지낸다.
'뭣이 중헌디!'대사가 떠오르는 칙칙한 오늘,
나도 현금 찾으러 가고 싶다.
백만 원이라도 찾아서 아울렛에 가볼까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