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약 많으신지? 이쪽 업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점약을 통한 정보교류다. 웬만큼 규모를 갖춘 조직 대부분이 그렇듯 공공기관 종사자들도 가로 세로 인맥과 그 사이에 주고받는 갖가지 유무형 정보들이 꽤나 긴요하게 작용한다. 함께 입직한 동기들이 튼튼한 가로 인맥이라면 이런저런 학연지연에 기반한 선후배 간은 핵심적인 세로 인맥이 될 것이며 거기에 이전 같이 일한 팀원이나 부서원 간 그루핑 인맥이 대각선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이런저런 동호회나 건너 건너 알고 지내는 간접 인맥까지 더해지면 대략 한 사람의 인맥지도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연 2회 정기 인사 시즌은 촘촘한 인맥들이 빛을 발하며 정점을 이루는 때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평상시 일상적이고 적당한 인맥 관리는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점약은 부담 없으면서도 넉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방식이라 하겠다.
안타까운 것은 점약을 통한 인맥관리의 중요성을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점약을 잘 활용하기는커녕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혼자의 시간일 때만 가능한 지극히 샤이하며 개인주의 적인 성향 탓에 모임이라면 딱 질색이고 웬만해서는 점약도 만들지 않는다. 타고나길 아웃사이더 기질인지 여러 사람이나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예고되면 그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파견 근무와 외야 생활이 길어지면서 가뜩이나 가느다랗던 인맥은 거의 사라진 지경이 되었다. 덕분에 몇 년째 인사 시기마다 기댈 곳 없어 스트레스만 받으며 일찍이 풍성한 인맥지도를 만들어두지 못한 것을 뒤늦게 한탄했다. 철저히 나 스스로가 만든 상황이니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나인가 하는 익숙한 번뇌와 괴로움에 시달렸다.
고백컨데 나는 늘 빽빽하고 풍성한 인맥지도를 갖춘 이들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부러워했다. 심지어 그들을 집중 관찰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것은 그들은 인맥을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일상생활과 같이 "직장"생활을 할 뿐이었다. 대부분 인맥관리를 계획하거나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업무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관계 맺는 대상(들!)에 대한 애정과 열의, 거기에 근간 같은 호기심과 에너지가 철철 흘러넘치는 이들이었다. 누군가와 말하고 부대끼고 간섭하고 나서서 관여하기를 좋아하는 성격들. 그들은 운 좋게도(내 눈에는 몹시) 그저 그런 성향인 것뿐이었다. 타인과 주변에 뻗칠 기운이 왕성한 타입. 나로서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
난항 끝에 어찌어찌 올해 초 인사이동이 완료되었고 덕분에 인맥에 대한 아쉬움은 상당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점약이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부서가 그렇듯 옮겨온 곳에서도 업무 메신에는 팀원 단체방이 있었다. 팀 단체방을 통해 서로 필요한 자료파일이나 기사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출장이나 회의 같은 부재상황도 수시로 공지했다. 그중 하나가 점약 현황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개인 약속이 있는 경우 하나 둘 점약 여부를 공지하며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이를테면 팀원들에게 '공식적' 양해를 구하는 셈인데 상대적으로 점약이 없는 이가 1~20분이나마 사무실에 길게 남아 전화를 받거나 부서장을 챙겨야 한다. 크게 무리되는 일들은 아니니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몇 주가 지나도 아예 점약이 없다시피 하니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빈한한 인맥이 문제라기보다는 어딘가 혼자만 사회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대로는 부끄러워 무슨 방도를 내야 하나 하던 차에 신기하게도 한 주 사이 무려 두 개 점약이 생겨났다. 정말이지 홀연히 생겨났다고 해야 할 만큼 뜬금없는 일이었다. 요 몇 년간 연락이 없던 이들이 갑자기 메신을 보내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급번개식으로 점약을 잡게 된 것이다. 거의 없던 일이었는데 달력에 표시를 하고 나니 뒤늦게 뭔 일들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업무적으로나 정보력에서나 나에게 아쉬워할 일들은 없을 텐데 하며 청첩장과 인사 교류 같은 것을 떠올려보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로서는 다행이고 반가운 일이다. 간만의 점약이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