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취합자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며 첫 편을 쓰고 나니 슬슬 취합생활 실무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조직 안에서의 직장 생활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취합자에게도 가장 필요한 덕목은 눈치다. 나로서는 태생적으로 부족하고 후천적으로도 발달시키지도 못한 터라 안타까울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직장생활 초년기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회사에 다니던 때부터 눈치가 부족해 일종의 사차원 취급을 받았는데 그러다 어느 때부턴 가는 개인적 콘셉트가 돼버렸다. 그러다 종국에는 차라리 눈치 없는 캐릭터가 돼버리리 자고 스스로도 작정해 버린 터라 이래저래 부족한 역량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취합자에게 필요한 눈치는 이런저런 상황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말하자면 ‘복합적’ 눈치다.
전보 발령과 업무 분장 후 두 달 여 경험으로는 크게 세 가지로 기한에 맞춰 자료를 받아내고 역시 기한에 맞춰 제출하는 적정 타이밍을 찾는 눈치, 그리고 받은 자료들의 변경 여부(어딘가 엉성하다 싶은 자료는 여지없이 바꿔달라는 우는 소리를 듣기 일쑤) 판단, 마지막으로 최종 아닌(어쩌면 영원히!) 자료를 최종으로 확정하는 눈치다. 모든 일에는 적어도 90% 이상의 완성도와 적기, 즉 제때 제출이 되어야만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완벽해도 늦어버리면 황이요, 추후 실수와 지적으로 점철된 엉성한 자료라면 제출했다 해도 의미가 없는 자료다. 취합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제 때에 95% 이상 완성도를 갖춘 파일을 송부하고 싶다. 간절히. 하지만 작성자들은 늘 아슬아슬하게 내놓기 마련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독촉을 거듭해도 제 때 주지 않는 강골들이 있다. 부서 전입 후 초기에 부서원들의 캐릭터를 파악한 편이라 몇몇은 유념, 관리하자 마음먹었는데 역시나 그들 몇몇이 문제였다. 그 강골 분들은 취합자에 대해서는 영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는지 서식을 숙지하지 않은 채 편의적으로 이해하시고는 서체며 양식, 단위(같은 참 말하기 뭣한 소소한 것들)를 자유롭게 작성해 버리셨다. 그나마 내주셨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싶지만 일일이 하나하나 고치고 있자면 인내심이 절로 함양되는 기분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역시나 변경 여부. 소소한 것들이야 취합자가 고쳐 본다지만 주요 내용이 바뀌거나 틀려버리면 참으로 곤란하다. 겨우 한두 페이지가 보태거나 빠진다 해도 수백 페이지 자료 전체의 쪽수가 달라지고 관련된 이런저런 다른 보고서들도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동시에 고쳐야만 한다. 그러니 이미 실컷 보내버린 후에 바꿔달라는 통사정을 들을 때면 참으로 암담해지는 것이다. 최종 취합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언제 그것들을 다 고치나 하는 걱정과 스트레스, 기타 갖가지 부정적 감정들이 속 깊은 곳에서 방울방울 몽글몽글 샘솟는다.(처음인 탓일까. 이번 제출 자료는 제본까지 마친 후 수정된 터라 결국은 스티커 붙이기, 일명 따붙이기 작업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진짜(!) 최종파일을 만드는 타이밍이다. 일반적으로 최종 여부는 소속 조직장의 검토완료로 확정되는 만큼 과장님께 얼마나 시간을 드려야 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꼼꼼하신지 쿨하신지 같은 개인적 성향과 스타일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다른 것은 물론 출퇴근이나 점심시간, 바이오리듬 같은 생활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니 취합자는 한 시간, 아니 십 분이라도 빨리 조직장에게 최종 보고하고 확정을 받아(내)야 한다. 만약 조직장이 검토과정에서 일일이 담당자를 불러 (바로 전날 보고를 마쳤음에도 취합 파일을 다시!) 따져 묻고 확인하신다면 그건 참 막막하고 답이 없으며 작성자들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그렇게 그렇게 어찌어찌 조직장을 안심시켜 가며 확정을 받아내고 모든 것에 조정,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제출기한이 코앞이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제출한다면 우선은 safe. 취합자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잠시나마).
그래서 그런 것일까 대부분 자료들의 마감시점은 시간이 아닌 일자로 명시되며 뒤에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 따른다. 0월 0일 0 요일, 퇴청 전까지. 혹은 퇴근 전까지. 당신이 언제 퇴근하든 그전에 제출하고 가라는 분명하고 엄중한 고지다.
그런 탓일까. 취합자들의 취합자, 곧 (현재 소속기관 기준) 2~300명 직원이 소속된 실국본부 단위의 최종 취합자의 업무 메신저는 늘 on이다. 항상 그 자리에서 당연하다는 듯 오늘 밤도 불을 밝히고 있는 전국 수많은 그녀와 그들에게 조용히 건투를 빈다. 우리 모두의 사정과 상황과 업무와 곤혹스러움이 잔뜩 담긴 파일들을 그러모아 한 파일로 만들고 있을 그들에게 오늘 밤만은 평온하기를. 열고 닫는 수많은 파일들에 아무런 오류가 없길.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