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몇 백 번이나 저 소리를 들었을까? 세고 싶지도 셀 수도 없는 반복되는 소리다. 다만 주기만은 일정하다. 대략 20초 간격 푸르륵 푸르륵. 소리는 한 마리 말의 구개부를 떠올리게 한다. 리얼하고 격동적이면서도 무료하고 반복적인 장면이 뿜어내는 재미없는 소리. 생명을 가진 존재가 나 살아있다 하는 당연하면서도 형식적인 소리. 지긋지긋한 생명력, 지극한 생명의 존재는 제주특별시로 돌아간다. 아니다. 관공서 근무자다운 공식 명칭을 쓰자. 제주특별자치도. 그리고 그 곳에 있던 부00 감독관. 이른 오전, 종합상황실에서 들리는 반복적인 말 푸르륵 소리와 그 때 그곳에서 나를 감독하던 부에게는 어떤 연관도 없다. 그저 지금 이곳과 그 때 그곳에서 들리던 소리와 소리가 자아내는 어떤 분위기가 그저 그를 떠올리게 할뿐이다.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감독해야 했던 제주특별자치도. 정확하게는 한라산국립공원으로 통하는 여섯 개 등산로 중 하나의 안내소. 처음 출장길에는 한라산 중턱의 현장이며 일들이 어리둥절했지만 나를 감독하던 그도 결국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할뿐이라는 것은 금새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곧 그가 시키는 일에 시들해졌다. 열심히 쓰고 열심히 고쳐 열심히 설명한다 한들 결국 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사실 그것은 핑계일 뿐이며 그저 매번 출장길마다 뒷치닥거리(적확한 표현이다!)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질렸다. 아니다. 더 정확히는 내가 그래야만 한다는 처지가 싫었고 그러다 종국에는 나 자신이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골똘히 생각해 본적은 없으나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알아졌다. 자연스레 차근차근 다른 것들도 알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별 수 없다는 것과 그저 모두가 어리석을 뿐이라는 것 정도였다.
아무튼 그와 함께 그러고 있었던 곳은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어리목 근처였고 그와 내가 열심히 들여다보던 것들은 주로 시안이나 원고가 출력된 종이뭉치들이었다.(그렇다! 그것들은 고작해야 종이뭉치들에 불과했다!) 우리는 주로 그 종이뭉치들 사이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눈을 부릅뜨고 여기저기 고칠 것들을 찾았다. 부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을 이렇게 바꾸니 저렇게 바꾸니 가능성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가 많아 자주 질려버리곤 했다. 물론 거기에는 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중간 관리자급 동석인 경우가 많았고 그들 외에도 늘 누군가 한 자리쯤이 끼어있었다.(심지어 화장실이나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러 탕비실을 오가는 이들까지 가세해 이러니저러니 제 나름의 훈수를 얹기도 했다.) 고작 종이뭉치일지언정 제 각각 보는 눈이 있다는 듯 시안을 내려다 본 이들은 뭔가 말을 얹고 싶어 했다. 게다가 그 곳에는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 ‘육지에서 온 것’들에게는 왠지 무엇이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여건은 좀 달랐다. 지금이야 다르겠지만 당시 디자인이나 카피 용역은 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수주할 수 있는 업체도 제한적이었거니와 미안한 말이지만 그 퀄러티라고 하는 것이 자치도민 스스로도 인정하듯 맡기고 싶지 않은 정도였다. 아무튼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을 맡은 회사는 누군가는 정기적으로 섬으로 내려 보내 보고를 해야 했는데 거리와 시간이 적지 않은 탓에 세 번에 두 번꼴로는 실무급 한 명만을 내려 보냈다. 그런 조건이었으니 감독관과 머리를 맞대고 있어야 했던 이는 자주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결정권자를 직접 만나기에는 직급이 미치지 못했으나 또 그것을 핑계로 마냥 일과 주요 결정을 미룰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번 한 번 원거리 출장 횟수가 늘어날수록 실무자의 부담은 커져갔으나 그런 속사정과는 무관하게 그곳 어리목 근처 2층 사무실에는 언제나 특유의 나른하고도 배타적인 분위기만 깔려 있을 뿐이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