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5살,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는 지나고 육아가 어느 정도 편해졌을 시기였다. 다른 사람들은 일을 그만뒀다가도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그런데 나는 왜 이제 와서 퇴사를 하려는 걸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사실 워킹맘으로 지내면서 매 순간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육아에, 집안일에, 회사일까지 해야 하니 매일 정신이 없었고 쉴 시간이 없었다. 신랑은 육아와 집안일을 분담하려 했지만 퇴근하고 오면 아이는 곧 잘 시간이고 밤 중에 할 수 있는 집안일은 몇 가지 없었다. 나는 재택근무를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내가 육아와 집안일을 하게 되었다.친정과 시댁은 멀어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못 가게 되는 상황이 될 때면 나는 집에서 아이를 보며 회사 일을 해야 했다. 사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회사 일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럴 때면 난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밤에 새벽까지 일을 해야 했다. 신랑이 휴가를 낼 수 있을 땐 다행이었지만 신랑네 회사는 급하게 휴가를 내기 어려운 곳이었다. 나는 항상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내가 퇴사를 못하고 계속 참았던 이유는 전업주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전업주부가 되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만 불린다는 말이 무서웠다. '나' 자신은 없어질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의문이 들었다.
지금 나는 '나'로 잘 살고 있는 건가?
전업주부가 되면 나의 정체성이 사라질까 두려웠는데 그럼 회사 일을 하는 내 모습이 나의 정체성인 것인가?
이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일은 그저 돈을 버는 행위일 뿐이었다. 쌓여있는 일 생각에 스트레스받고 일하느라 아이를 못 보는 시간이 괴로웠다. 나의 정체성은 어떤 회사에 다니고 무슨 일을 하는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지 이제 1년이 되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더욱 행복하다.아이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육아에 대해 공부하고 아이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재밌다.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더 좋은 엄마가 된 거 같은, 더 좋은 사람이 된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생긴다.
하지만 장점만 있지는 않다.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마음이 힘든 순간들도 있다. "집에서 뭐해? 심심하지 않아? 언제까지 쉴 거야?" 같은 말들을 들으면 억울하다.나는 집안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있는데 나의 노동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슬프다.돈을 벌다가 못 버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립할 수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의기소침해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고학년 정도 되면 이제 내가 집에 있지 않아도 될 텐데 그땐 뭐하지 걱정도 된다.이런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다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자.
나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워킹맘으로 지내면서는 시간이 없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일 먼저 한 것은 독서였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고 좋은 구절들은 필사를 했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았다. 처음으로 짧은 에세이를 써서 공모전에 응모를 한 것이다. 항상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생겼으니 이제 미룰 핑계가 없다. 그래서 브런치도 도전하게 되었다. 3번의 시도 끝에 작가로 합격되었다. '작가'라는 단어가 낯설지만 기분 좋고 들을 때마다 설렌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하다.
나는 앞으로 '엄마'로만 살지 않고 '나' 자신으로도 살아가기 위해 나를 더 알아가려 한다. 나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