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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HY Jul 01. 2022

엄마가 농구를 하다니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모는 언제 놀러 와?"

"글쎄~ 평일 이모가 회사 가고 주말엔 우리가 집에 없어서 이모한테 놀러 오라고 할 수가 없네."

"그럼 외할머니는? 외할머니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하자."

"외할머니? 음... 그럼 ♡♡이가 외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평소에 외할머니를 찾지 않는 아이가 뜬금없이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서 놀랐다.

나는 아이에게 전화를 연결해줬고 외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엄마는 바로 내일 놀러 가겠다고 하셨다.

아이는 내일 외할머니가 오면 농구하러 가자고 했다.

아, 그래서 외할머니 놀러 오라고 한 거였구나.


요즘 우리 아이는 농구에 푹 빠졌다.

거의 매일 아파트의 실내체육관에 가서 농구를 한다.

실내체육관에는 아이 키의  배가 훌쩍 넘는 높이의 농구대가 있다.

아이는 농구대를 향해 공을 던지고 또 던졌다.

'설마 넣겠어. 골 안 들어간다고 짜증 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농구공이 골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우와!!!!!"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기도 골을 진짜로 넣을 줄 몰랐나 보다.

다시 공을 던졌다. 던지고 던지다 또 골이 들어갔다.

아이의 얼굴에서 놀람, 기쁨, 환희, 자신감, 뿌듯함이 보였다.

아이는 한 시간 내내 쉬지 않고 공을 던졌다.

첫날에는 16골, 다음날에는 20골, 그다음 날에는 30골을 넣더니 요즘에는 70골을 넣는다.

우리 아이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뽐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체육관에는 주로 엄마와 자신밖에 없다.

골을 넣을 때마다 박수를 쳐주지만 그걸론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갑자기 이모와 외할머니를 찾았던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엄마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실내체육관 갔다. 나는 엄마에게도 농구공을 쥐어줬다. 아이가 하는 모습을 구경만 하면 심심할 테니 엄마도 한 번 해보라고. 

아이와 나 그리고 엄마가 차례대로 공을 던졌다.

몇 번 하시다가 그만하실 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엄마는 점프까지 하면서 열정적으로 공을 던지셨다.

우리 엄마는 평생 산책 외에 다른 운동은 해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특히 공을 다루는 스포츠는 직접 해본 적도,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본 적도 없으셨다.

엄마는 농구공을 처음 만져본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보다 골을 더 잘 넣으셨다.

엄마 땀으로 등이 다 젖을 때까지 계속 농구공을 던지셨다. 엄마 웃고 있었다.

골이 들어갔을 때는 환호성을 지르셨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엄마가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운동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가 농구를 하다니!

남들이 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예순여섯의 나이에 처음 잡아보는 농구공을 이렇게 잘 던지시다니. 엄마가 젊었을 때 농구를 했더라면 선수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까지 했다.

엄마가 농구공을 던지는 모습, 그것도 즐기면서 하는 모습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그림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운동을 해본 것도 놀이다운 놀이를 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작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가 외할머니를 찾은 덕분에 엄마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엄마에게도 이렇게 활기찬 모습이 있었다. 

나는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쩌면 엄마도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평생 일만 하시느라 쉴 시간도 없고 흔한 취미 하나도 없었던 우리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걸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엄마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다.

좋아하는 걸 찾으려면 우선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

해봐야 재미있는지 없는지 알지.

나도 그랬다. 독서, 드라마 보기 이외에 딱히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아이와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재미있는 게 많아졌다.

수영, 스피드보트, 농구, 축구, 스키, 얼음썰매 등등.

아이가 없었으면 시도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도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겠다.

내가 하자고 하면 뭐하러 그런 걸 하냐고 하시겠지만

손자가 하자고 하면 흔쾌히 같이 해주실 것이다.

엄마한테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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