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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HY Jul 22. 2022

아버지가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 주는 거 싫습니다

요즘 핫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다.

7화에서 우영우의 아버지는 우영우에게 말한다.

"너도 부모가 되어 보면 알 거야. 자식의 좌절을 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우영우가 말한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도 대신 막아 주는 거 싫습니다. 하지 마세요."


부모가 되어보니 그랬다. 자식이 아프면 내가 더 아팠다. 내 자식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로애락은 인간의 당연한 감정인데 나는 아이에게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게 해 주고 부정적인 감정은 최대한 못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울 때면 얼른 달래서 눈물을 멈추게 만들고 싶었다. 아기 때는 안아주거나 과자를 줘서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클수록 그런 방법은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슬플만한 일을 되도록 안 만들려고 했다. 아이와 놀러 가기로 약속을 했으면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꾹 참고 놀러 갔다. 아이와 게임을 할 때면 늘 져줬다. 게임에 져서 속상해하는 걸 보는 게 힘들었으니까. 아이가 웃고 즐거워하는 것만 보고 싶었으니까. 집안은 아이의 장난감으로 가득 채웠다. 한 번은 갖고 놀지 않는 인형(아이 인형도 아니고 심지어 내 인형이었다)을 버렸다가 아이가 한밤중에 갑자기 그 인형을 찾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은 급하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그 인형을 찾아 먼 동네까지 가서 인형을 사 왔다. 그 후로는 작은 장난감 하나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슬픔을 막아줄 수는 없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유치원 등원을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등원할 때 엄마랑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설 때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유치원은 잘 다니길 바랐으나 처음엔 잘 가나 싶더니 역시나 유치원도 가기 싫어했다. 나는 워킹맘 생활을 버티고 버티다 지쳐 결국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나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가정보육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이 내 심장에 콕콕 박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아이가 이렇게 유치원을 싫어하는데 꼭 보내야 하는 게 맞아?

이제 회사일도 안 하는데 집에서 아이 볼 수 있지 않아?

나 편하려고 보내는 거 아냐?

이런 질문을 수백 번 해본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유치원은 가야 한다'였다. 가정보육으로는 가르칠 수 없지만 유치원에서는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대인관계. 아이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매일 만나고 함께 생활하며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협동한다. 대인관계를 배우려면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그래서 유치원은 계속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유치원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래. 유치원 가기 싫지. 엄마도 어렸을 때 유치원 가기 싫어했었어. 유치원 가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대. 특히 주말에 쉬다가 유치원 가려고 하면 더 가기 싫대. 그래도 유치원 가는 날엔 가야 해. 하기 싫은 걸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거야. 그러면서 마음이 튼튼해진대."

내가 흔들리지 않고 유치원은 꼭 가야 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니 아이도 점점 받아들였다. 등원할 때 아이의 울음이 어제보다 줄어들면 "어제는 많이 울었는데 오늘은 조금밖에 안 울었네. 네 마음이 더 튼튼해졌나 보다." 울지 않고 등원하면 "이제 눈물이 안 나네. 마음이 정말 정말 튼튼해졌나 봐!"라고 이야기해줬다.

"마음이 튼튼해지고 있다"는 말을 계속해주니 마법의 주문처럼 정말 아이의 마음이 튼튼해졌다. 이제 아이가 "유치원 가기 싫지만 그래도 가야지.", "오늘은 유치원에 가고 싶어."라는 말도 하게 되었다. 엄마랑 헤어지기 힘들어하고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길고 긴 등원 거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의 슬픔을 인정하지 않고 해결하려고만 했다. 슬픔의 원인을 제거하면 되는 줄 알았다. 육아를 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의 마음이 다칠까 봐 너무 겁냈다. 아이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바로 해결해주려 하고 아이가 싫어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사전에 막으려 했다. 그게 나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오히려 아이를 더 크고 단단해지게 만드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아이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고 싶어 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여전히 아이가 울면 달래주고 싶고 가 잘 안 돼서 짜증내면 대신해주고 싶지만  꾹 참아본다.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고 실패도 해보면서 배워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주려한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부모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공감과 응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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