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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HY Apr 20. 2024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독립영화라서 대부분 모르실 것 같습니다.


11살 동춘이가 질문합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어른들도 대답하지 못하는 이 질문에 막걸리가 답해준다는 아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동춘이는 국영수, 창의과학, 태권도, 미술, 코딩 안 다니는 학원이 없습니다.

학원을 왜 다녀야 하는지 물어보면 어른들은 대답을 회피합니다.

사실 어른들도 모르기 때문이겠죠.


동춘이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2인 3각 달리기를 하고 있어.


동춘이 엄마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갔고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사회에서 도태된 것 같았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동춘이 엄마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는 동춘이 엄마에게 당신은 지금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은 엄마는 그때부터 육아에 전념합니다.


아이와 함께 2인 3각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아이를 열심히 키웁니다.

아이에게 좋다는 건 다 가르치고 오로지 아이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아이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 됩니다.



영화 속 동춘이 엄마의 모습에서 제가 보였습니다.

저도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대학, 직장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육아도 열심히 했습니다.

온갖 육아 서적을 읽고 육아코칭 동영상을 봤습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말은 진리라 여기고 모두 다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좋은 부모, 정말 이상적인 부모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부터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지 까지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말해야 한다.

안정적인 애착을 가져야 한다.

기분에 따라 아이를 대하면 안 된다.

소리 지르지 말아야 한다.

평정심을 가지고 단호하게 훈육해야 한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해야 한다.

등등등


해야 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어려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내가 지금 진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고

나 잘 살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할수록 내 아이가 좋은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습니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아이가 바르게 자랄 거라 기대했습니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면

'내가 뭘 잘못했나?'

'내 육아 방식이 잘못 됐나?'

걱정이 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동춘이 엄마와 저는 방식은 달랐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인 건 똑같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이를 잘 키워야 할까요?


아이는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닙니다.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것도 아니고 100점을 받아야 하는 시험도 아닙니다.

아이는 나의 가족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의 틀에 아이를 맞추려 하게 됩니다.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돼. 이런 행동을 해야 해. 이걸 배워야 해.

아이를 끊임없이 통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이와 계속 부딪힙니다.

부딪히지 않고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동춘이 같은 아이라면 더 걱정이 됩니다.

언제까지 부모님의 가이드를 따라야 할까요?

부모님의 가이드가 없어지면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요즘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씩 내려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내가 키우는 사람이 아닌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요.

내가 나의 삶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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