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엄마는 가깝고도 먼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매일 일하시느라 바쁘셨습니다.
그나마 집에 계신 시간엔 같이 TV를 봤죠.
대화가 별로 없는 집이었습니다.
대화도 없는데 고민 상담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죠.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습니다. 불만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하루종일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지 알았기 때문에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생인 저에게 주어진 일인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엄마한테 효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엄청 좋은 대학에 가지는 못했어요.
졸업 후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한테 용돈을 많이 드리고 싶었지만
조그만 회사에 취직해서 그것도 어려웠죠.
결혼 후에는 제 가정을 꾸리기도 바빴어요.
그래서 늘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나는 못난 딸 같았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내가 효도라고 생각했던 게 과연 엄마가 원했던 걸까 의문이 들었어요.
엄마가 된 제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사는 거예요.
엄마에게 효도하지 못해서 자책하고 자신을 못난 자식이라 여기는 건 절대 원하지 않아요.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래서 죄책감은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효도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효도
그건 바로 전화 한 통입니다.
평소엔 대부분 엄마가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는 항상 제 안부를 물었어요.
"밥은 먹었어?" "뭐 해?"
그러면 단답형으로 대답했어요.
"응" "일 해."
너무 나쁜 딸 같나요?
변명을 하자면 엄마와의 전화가 좀 어색하기도 했어요.
대화를 많이 해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전화는 금방 끝났죠.
요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도 엄마의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을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 딸~ 왜?"
"그냥. 심심해서. 엄마 뭐 해?"
"엄마 친구들이랑 여행 왔어."
"오~ 웬일로 여행을 가셨대. 어디로 여행 갔어?"
저의 질문에 엄마는 어디로 여행을 가셨는지, 친구분들과 뭘 하셨는지, 지금은 뭘 하고 계시는지 얘기하셨습니다.
엄마와의 전화가 편하게 느껴졌어요.
그동안 저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대화를 많이 안 해봐서 엄마랑 전화하는 게 불편해.'
이건 핑계였어요.
엄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엄마의 안부를 물으니 대화가 편해졌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엄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어요.
우리는 가족이지만 서로에 대해 정말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좀 더 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