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추석마다 외할머니댁에 갔다.
외할머니 생신이 음력 8월 15일, 추석이어서 일가친척들이 모였다.
친척들을 만나면 반가웠지만 안부인사를 나누고 나면 할 말이 없어졌다. 같이 밥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켜고 할머니 생신을 축하드리고 나면 TV를 보는 게 우리의 추석날 루틴이었다. 외할머니를 좋아했지만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외할머니는 말수가 없는 분이셨다. 추석에도 작은 방에서 혼자 TV를 보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움직이게 만든 건 우리 아이였다.
친척 중에 아이가 있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온 가족들의 관심은 우리 아이에게 집중되었다.
친척 중 제일 나이 어린아이가 스무 살이 넘었으니 그 집에 아이가 들어온 건 거의 20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 아이는 온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이가 말을 하고 한창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아이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말했다.
"왕할머니, 숨바꼭질해요."
힘드실까 봐 말리려 했는데 웬걸 외할머니는 웃으며 그러자 하셨다.
다 보이는 곳에 숨은 아이를 못 본체 하며
"어디 있지~? 어디 갔나~?" 하시다가 "찾았다!"하고 찾으면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또 해요! 또 해요!"를 외쳤다.
아흔 살 할머니와 네 살 아이가 함께 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이와 놀아주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체력이 아니었다.
속도가 느려도 되고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아이를 바라보고 찾고 웃어주면 되는 거였다.
외할머니는 두 눈에 사랑을 가득 담아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러니까 외할머니는 최고의 숨바꼭질 파트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