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다. 낯도 많이 가리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보단 혼자 있는 게 편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친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춘기 때부터 난 친구들한테 별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 중 딱 한 명만 집어 그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여러 사람과 대화를 많이 안 해봐서 그런지 난 항상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려움을 느꼈다. 어색하고 긴장되고 떨렸다. 그리고 내 생각을 표현해 본 경험이 적어서 말하고 싶어도 입 밖으로 잘 안 나왔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적당한 단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진짜 내 생각을 말로는 50%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말을 하다 보면 횡설수설하고 내가 제대로 말한 게 맞는지,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들었을지 걱정이 됐다.
글로 쓰는 건 좀 편했다. 글은 내가 쓴 걸 보고 다시 고칠 수 있으니까. 말은 내가 한 번 내뱉으면 고칠 수도 없고 대화를 하려면 빠르게 주고받아가며 말을 해야 해서 생각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글은 고심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단어를 고르고 골라 쓸 수 있다. 그렇다고 글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글을 쓰면서 내 어휘력과 표현력이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책에서 작가들이 풍경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자세히 묘사하는 구절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예를 들어,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소나무가 드리운 짙은 그늘 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땅에 턱을 괴고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면 소나무 아래 앉아있는 고양이와 내가 눈이 마주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장면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히 그려진다. 나였다면 그저 '소나무 아래에 고양이가 있었다.' 정도로밖에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책에 이런 구절도 있다.
요양원의 밤은 고요의 시간, 깨어 있음에 고독한 시간, 어쩌면 노인들의 낡은 필름이 아무도 몰래 덜그럭거리며 재생되는 시간이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만 같다. 어떻게 저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언젠가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글로 내 생각을 쓰다 보면 나중엔 말로도 편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될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어 좋았다. 글을 꾸준히 쓰도록 자극제가 되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기뻤다. 라이킷 알림이 뜰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자꾸 라이킷이 몇 개인가 세게 되고 글을 올리고 나면 라이킷 알림이 오는지 안 오는지 신경 쓰게 됐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인정을 받으면 좋겠지만 난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니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 실력 향상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알림을 껐다. 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브런치에 들어가 보게 되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본질에 충실해야지. 수많은 글쓰기를 통해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좋은 점이 있다. 글을 쓸 때는 주로 현재 나의 관심사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역시 육아다. 그래서 아이와 있었던 일을 많이 쓴다. 글로 쓰려다 보니 아이와 함께 있었던 일들을 한 번 더 곱씹게 되고 그러면서 아이를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글에 넣을 사진을 고르느라 아이의 사진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아이와 함께한 행복한 순간들을, 아이의 눈부신 성장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다른 사람들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