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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쳤다는 말의 무례함
by
HIHY
Jan 5. 2022
어른들에게는 잘 쓰지 않지만 아이들에게는 쉽게 쓰는 말들이 있다.
'삐쳤다'는 말이 그런 말들 중 하나다.
나보다 윗사람에게 삐쳤다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만약 쓴다면 그건 그 사람과 아주 친하고 장난을 칠 수 있을 정도로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말을 쓸 땐 조심해야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사람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지 잘 아니까.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참 쉽게 쓴다.
심지어 놀리듯이 쓰기도 한다.
에이~ 삐쳤어? 또 삐쳤네.
아이가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하고 집에서 종종 하던 Spot it 게임이었다.
같은 그림을 먼저 찾는 사람이 카드를 가져가는 게임이다.
두 아이는 열심히 게임을 했다.
상대방이 카드를 가져가면 속상해하고
본인이 카드를 가져가면 기뻐했다.
게임을 잘 이어가다가 하나의 카드를 가지고 자기 꺼라며
아
웅다웅했다.
두 아이가 거의 동시에 같은 그림을 찾았는데
아이 친구는 같은 그림의 이름을 먼저 외쳤고
우리 아이는 카드를 먼저 집은 후 이름을 외쳤다.
원래 같은 그림의 이름을 먼저 외친 사람이 카드를 가져가야 하는 것이기에 아이 친구가 카드를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카드를 잡고 놓지 않았다
.
나는 아이에게
게
임의 규칙을 설명해주고 카드를 친구에게 주라고 말했다.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자기도 같은 그림 찾았는데 그 이름이 잠깐 생각이 안 나서 늦게 말한 거라고 했다.
"그랬구나. 그래도 늦게 말했으니까 이 카드는 친구한테 줘야 해. 다음엔 먼저 말하고 카드를 가져오자."
재차 말해도 아이는 카드를 주지 않았다.
결국
아이
친구
는 울고 우리 아이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리
면서
게임이 끝났다.
어른들은 방에 들어간 우리 아이를 보며 삐쳤다고 말했다.
"아유~ ♡♡이
또
삐쳤네
.
"
나는 아이가 삐친 것이 아니라 속상해서 그런 거라고 대변해주고 싶었다.
경쟁심이 강한 우리 아이는 질 때마다 많이 속상해한다.
자신이 졌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오르고
그 눈물을 들키기 싫어 숨어버린다.
게다가 게임 시작 전에 알려주지 않은 룰을 게임 중간에 알려주며 네가 틀렸다고 해서 아이는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게임에서 지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 인정하기 싫고 슬픈 일이다. 그런 아이에게 삐쳤다고 말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다.
아이는 삐친 것이 아니라 속상하고 화가 나고 슬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삐치다'는 국어사전에 '성나거나 못마땅해서 마음이 토라지다'라고 쓰여 있다.
이 뜻에 따르면 우리 아이가 삐친 게 맞긴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을 사용하고 싶진 않다.
삐쳤다는 말에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속 좁게 군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속상한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뭐 그런 걸로 속상해하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이는 원래 별 것도 아닌 일에 속상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아니, 아이뿐만 아니라 원래 사람이 그렇다.
'유미의 세포들'이 생각난다.
유미의 세포마을에는
사랑 세포가 만든 '박'이 있다. 남자 친구인 웅이에게 불만이 있을 때 세포들은 이 '박'에 콩주머니를 던진다.
웅이가 거짓말을 했을 때, 웅이가 여사친을 좋아했었던 것을 알게 됐을 때,
웅이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않을 때 세포들이 아무리 콩주머니를 던져도 '박'
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 '박'이 터지게 된 건 웅이의 단답형 카톡 하나
때문이었다.
사람은 원래 별 거 아닌 걸로 상처받고 별 거 아닌 걸로 감동한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 다르다.
삐쳤다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얕잡아보고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측정할 수도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별 거 아닌 일이니 너한테도 별 거 아닐 거라고 말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삐쳤다는 말을 쓰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난 너의 마음을 존중해.
무엇 때문이든 네 마음이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
네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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