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상업성 그리고 시사성까지 완벽한 소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유키코의 연인으로서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미사키의 죽음에 흥분하며 기뻐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욕구불만에 가까운 불쾌한 공허감을 느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결론이 날 때까지 주인공과 함께 추리하며 끝까지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스토리의 전개가 궁금해 현실 속 일상이 시들해 보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가의 집필능력은 이미 '용의자 X이 헌신'에서 증명했다. 추리 소설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짜임새 있는 소설의 구성과 등장인물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심리에 감탄한다. 단순히 재미를 떠나 시사하는 점도 적지 않다.
그의 추리소설의 전개에 불을 지피는 스타트는 늘 그렇지만 의문의 죽음이다. 유키코라는 여고생이 산부인과 부근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트럭에 치여 사망한다. 사망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출혈로 사고현장은 끔찍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사고를 당하고 조사를 해보니 궁지에 몰듯 뒤쫓았던 사람이 바로 학생부 지도교수 미사키선생이다.
여고생의 죽음뒤에는 학교라는 존재가 그림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이끄는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 일본소설은 출간된 지가 20년도 넘었고 당시 권위적인 압박이 심할 거라 예상되는 명문 슈분칸 고등학교라고 설정되어 있다.
권위적인 집단의 특징은 솔직함이 부족하다. 촘촘한 규칙은 말 그대로 학생들의 인권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 시 그들은 안전한 침묵을 선택한다.
주인공 '니시하라'는 죽은 여학생과 자신과의 관계(남자친구이자 애기아빠)가 있기에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명확히 짚고 싶어 한다. 여학생의 임신자체로 사고의 원인을 잡는 학교 측에 불응하며 미사키선생의 사과를 당당히 요구하고, 학교 내 학생들의 지지까지 받기에 이른다. 학생들과 학교 측과의 마찰로 양상이 전이되면서 인내하던 인권문제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지간히 학창 시절, 선생님을 싫어했다는 반항심을 느낄 수 있다. '니시하라' 성격이 그였음을 간과하기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학창 시절 내면은 그와 같지 않았을까.
그러다 소설이 끝나고 저자의 후기를 읽다 결국 피식 웃음이 터졌다. 존경과 품위는 학생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게 맞다. 존경받지 못한다고 억울해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의 후기를 보고 조금 각성하면 어떨까.
초등학생 때부터 교사를 아주 싫어했다. 왠지는 모르지만 이런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위세를 떠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게 늘 불만이었다. 아무리 봐도 존경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점은 그 사람들이 자신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이 채 종결도 되기 전에 갑자기 미사키 선생이 교실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이야기는 급반전을 이루며 학교는 여론매체의 혼란의 중심이 되고야 만다. 당연히 '니시하라' 야구부 주장은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연이어 '히리코'라는 여학생이 교실에서 가스중독으로 죽을뻔한 사건이 이어진다.
소설의 줄거리를 적을 의사는 없다. 직접 읽기를 권하는 게 저자에 대한 예의라 생각이 든다. 그의 소설은 늘 그렇지만 한 사건만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소설은 학교의 부조리로 시작해서 학생 인권문제를 다루다가 사회적 환경문제까지 확장된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짜임새 있는 저자의 소설윤곽에 감탄하기에 이른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성장소설이자 추리소설이면서 환경문제의 심각성도 임팩트 있게 다룬 소설이다. 흡입력 있는 전개 속에는 어른들의 양심이 타락된 결과물들과 함께 거침없이 보여준 내용이었기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