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백수들의 놀이터가 된 나의 옥탑방.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을까. 더 이상 고요한 옥탑의 아침은 사라지고 없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일제의 침략에 점령된 뒤 겪은 식민지 백성의 슬픔이 이러했을 터. 실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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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집을 구경한다는 건 그 사람의 내장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내시경으로도 볼 수 없는 몸속 어떤 상태 말이다. '방학 옥탑남'에게선 소화불량이 엿보였고, 그에 비해 '수유 반지하녀'는 리드미컬한 연동운동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 옥탑방은 어떤가? 아마도 만성변비일 것이다. 빠져야 할 똥차가 너무 많은.
'불편한 편의점'에서 큰 인기를 얻은 김호연 작가의 '망원동 브라더스'는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익살스러운 만화캐릭터들이 장식된 소설책 표지만 봐도 머리를 식히는 즐거운 소설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좋아하는 개그맨이 등장하자마자 웃을 준비가 된 관객이 된 것 같다. 이것은 소설책인가, 만화책인가 정의를 내리기 힘들 싶을 정도로 활자들이 춤을 춘다.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연극마당에서 한바탕 웃다 돌아온 기분이다.
이번 소설의 장소는 옥탑방이다. 옥탑방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잠시 보이는 낭만적인 곳으로 상상할지 몰라도 옥탑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엔 여지없이 냉골인 곳이다. 굳이 좋은 점을 찾으라면 층간소음이 없고 2주 동안 밀린 빨래를 널고도 넉넉한 공간이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영준)은 수상작으로 운 좋게 만화계에 입문했지만 이후 스토리가 없는 35세 무명 만화가다. 마땅한 일감이 없으니 백수나 다름없는 것이다. 서울 망원동 옥탑방 8평짜리 월세도 밀려 보증금에서 까이고(5백에 30십) 있는 불안한 청춘이다. 꿈꾸던 만화일은 히트작이 안 나오니 생활고에 학습지만화 삽화라도 궁여지책 찾는 형편이다.
주인공 영준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준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착한 성품을 지녔다. 사람들은 인정과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거절에 약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그의 주변에는 이 시대의 낙오자들이 꼬인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괴짜들이다.
그의 첫 만화 출판사 영업부장이었던 40대 기러기 아빠(김 부장), 만년 20대 고시생(삼척동자), 그의 첫 만화 스토리작가였지만 50대에 황혼이혼 당한 남자(싸부)까지 서울 망원동 옥탑방에는 사회와 가정에서 받아주지 못해 내친 백수(루저)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돈이 없지 의리와 우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막힘없는 입담까지 곁들여 너무나 재미있게 읽힌다. 소설의 어느 한 대목이라기보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줄줄 읽히기 때문에 기습적으로 웃음이 터진다.
"가야분식 빨리 먹기 대회" 에피소드는 정말 너무 웃겨서 힘들었다. 아, 정말 이 작가 대박이다. 이 에피소드로 여러 관계의 사람들이 이어지는 자연스러움 또한 김호연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일전의 '불편한 편의점'도 스멀스멀 관계의 이어짐이 정말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지나치게 서민적이고 긍정적이다. 유쾌하기에 늘 웃음이 끊기지 않다. 유유상종이기 때문이다. 작가 특유의 명랑함,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글에도 묻어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의도는 충분히 알 것 같다. 우화에서 우리가 삶의 정답을 찾을 용기를 발견하듯이 저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와 해결방향을 쫓아가면서 독자들에게 삶이 그렇게 무겁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혼자는 용기가 선뜻 나지 않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권하고 행동하고 실수하는(또는 자폭하는) 모습을 선례로 보여줄 때 우리는 허탈하지만 웃게 된다. 한 번 해볼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반복되는 실수와 자책으로 힘든 그 시기를 우리는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설 속주인공들을 통해 독자 자신도 그들이 힘을 얻고 일어서는 삶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릴 것을 예상했다. 그것도 즐겁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삶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한 없이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다. 충분히 수상할만한 작품이다.
'나의 인생은 사회적 시선이나 잣대로 함부로 매겨질 인생이 아니다'라고 결론지을 독자들을 향해 작가는 한 가지 제안을 슬쩍 끼워 넣는다. 사회적 시선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의 적절한 타협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소설 속 무명 만화작가인 영준에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들이 위로하듯 말한다.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 영준은 당시 그 말을 들을 때 좌절한다.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이 생활고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회한다. 생활고를 벗어날 학습만화를 선택한 것이다. 생활체력을 키우 돼 현실의 흐름을 일깨워준 "수유 반지하녀"의 조언을 참고로 자신의 꿈인 웹툰 만화에 도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