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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좋은 독자가 만든다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_코엑스에 다녀오다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문학은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기가 드물지요. 최고의 작가들은 가난하게 살다 죽습니다. 조악한 작가들이 돈을 벌지요. 항상 그래왔습니다. 다음 시대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작가의 재능이 저 같은 에이전트에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때쯤 가서는 저도 이미 죽어 없을 텐데요. 제게 필요한 것은 하찮더라도 성공을 거두는 작가들입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본문 中



나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려는 식구들을 깨우기 위한 용도로 뉴스를 틀뿐이다. 그러다 오늘아침, 코엑스에서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고 이번 주말이면 끝난다는 보도를 듣고 버스 놓친 사람처럼 일시정지 상태가 됐다. 정지버튼이 풀린 것은 그나마 완전히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안도가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삼성역 코엑스에 내리니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우리나라 독서인구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예약을 했음에도 입장줄이 길어서 정식 입구까지 1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책의 도시로 군대처럼 씩씩하게 들어간다는 기분이 들어 얼마나 설레고 좋던지 모른다.


깁스를 하고 휠체어까지 타고 온 책 좋아하는 아이가 너무 이뻤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책들의 도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종이의 거대한 향기가 내 눈을 강타했다. 처음엔 그 향기가 좋다고 느껴졌는데, 1시간여 지나자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각 출판사별로 판매하는 책들,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형형색색의 이벤트와 팬시용품 그리고 해마다 주최 측에서 키워드를 내세운 책들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한꺼번에 충돌하는 느낌이 들 때쯤엔 피로도가 급속도로 통증처럼 다가왔다.


아,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이 들어 의자를 찾았는데 주변에 없었다. 부스에서 서성이는 사람들, 책을 고르는 사람들, 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만 있었다. 생수라도 마시면 좋겠다고 자판기를 찾았고 드디어 정신을 챙겼다. 체한 사람처럼 생수를 끌어안고 조심스레 이동하며 책들을 살폈다. 사전에 코엑스 배치정보를 숙지하고 나서지 않은 내 잘못이 컸다. 나는 서두르지 말라고 몇 번을 속으로 진정시킨 뒤 조금 먼발치에서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며 움직였다.


나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데도 서점에 나온 책들이 이렇게 많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많은 책들을 다 못 읽겠다 싶은 생각에 조금 허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 많은 책들 속에서 진중한 책들은 몇 권이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슬며시 든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는 천재시인 '그림자제왕'이 지하로 내몰린다. 그는 오름의 경지인 깨달은 작가였다. 그렇지만 그를 등용시킬 최초의 관문인 출판업계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을 돌렸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훌륭한 문학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찾는 사람들은 내용은 별것 없는 자극적인 글(책에서는 평범한 것, 덤핑 책, 파본, 대량서적)을 구매하고, 출판업계는 그런 책을 쓰는 작가를 찾아다녔다.  그림자제왕은 '그것은 잘 팔리는 종이지, 그 위에 쓰여 있는 말들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순간 내가 이 방대하고 무시무시한 국제도서전에서 무슨 책을 고를 수 있겠나,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도 꾸역꾸역 고른 책 한 권이 소득이다. 무엇보다 눈이 따가웠고, 다리는 힘이 들어가 무거웠다. 계획은 그곳에서 남편이 퇴근할 무렵까지 있는 것이었는데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 지하 영풍문고로 피신했다. 그곳에도 거대한 책무덤들이 있었지만 한결 편안했다. 공기순환이 그곳보다 월등히 잘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편안한 의자도 있었다.


탈고를 하고 책이 출판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에 비해 독자들은 몇 시간을 투자하면 저자의 지식과 지혜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투자 대비 성과 및 가성비는 최고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미안한 마음에 독서를 마치면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가슴에 와닿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게 되는 책을 만나면 더욱더 그렇다. 나와 같은 독자들이 아마도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도 좋은 책을 고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훌륭한 작가들을 격려하는 방법이다.


오늘 국제전시전에 전시된 모든 책들은 훌륭한 작가분들을 찾아내고 등용시키고 출판된 책들일 것이라 믿고 싶다. 나의 의구심은 피로감에서 온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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