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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내가 지나온 여정일 뿐이다



우리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큰 위로와 행복을 느낀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따뜻하게 애정을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내 삶이 안정적으로 풍성해졌다 믿는다.  그래서 행복의 도취에 빠져 조금은 과장하기도 하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과 나의 관계를 이쁘게 포장하며 과시까지 한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과 함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 시간은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를 획일적으로 평가하게 하고 심지어 자신을 무조건 이해해 줄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을 하기에 앞서 감정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돌발된 어떠한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나와 같지 않다는 감정적 판단이 이질감으로 몸서리를 치게 되는 순간이다.  


감정적으로 결정을 내린 상대는 이유를 설명할 배려 따위는 생략한 채 차단을 통보한다.  나를 알면서 내 마음에 상처를 줬다는 판단이 서운함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 통보를 받은 상대는 자신이 이해했던 정보의 토대에서 받아들이기엔 상처의 깊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상대는 고립된 상황에 처하고 자신이 했던 행동을 추적하지만 부족한 정보와 논리적인 판단이 서지 않기에 상처를 안고 동굴 속에 갇히게 된다.  그들의 주변에 현명한 중재자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상대를 폄하하거나 관계를 끊는 방향 쪽에 서서 위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는 인간관계의 상처는 모두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에게서 온다.  나는 여기서 관계의 소원함, 종말, 절교, 단절이 오게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그것은 더 이상 상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이른다.  필요한 것에 대한 판단이 어떤 기준일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내린 그 판단은 각오에서 비롯되었을 테다.


오랫동안 유지되는 좋은 인간관계란 어떤 것일까.  그것 또한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사랑이나 애정보다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예의'인 것 같다.  창고 대방출처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내 것을 쏟아내고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랑이 아니라 가끔 바겐세일하는 단골가게여야 한다.


예의를 지키는 사람은 겸손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예의를 지키는 사람 앞에서 예의 없게 굴 수는 없는 것처럼.  


잘하려고 애쓴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인 오해를 받았다.   나는 동굴 안에서 이성적인 이유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혹시라도 놓쳤을 단서를 찾으며 나를 나무랐다.  하지만 오랜 사색의 결론은 나와 같을 거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동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내가 필요 없어진 사람에게서 더 줄 것은 없다. 


가슴은 아프고 속상하지인생에서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내가 지나온 여정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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