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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를 꺼내며..

작은 습관 들이기


나는 기상을 하면 제일 먼저 안경을 쓰고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찬 뒤에 제습건조기에 있는 보청기를 꺼내 귀 속에 넣는다.  사실 착용습관이 일상화되기까지 고생이 좀 있었다.  새롭게 끼어든 생활패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관 들이기는 너무 작은 행위이기에 무시하다 오히려 놓치기 일쑤였다.  집에서는 상관없지만 외출이나 장거리 여행을 가서 되돌아가기엔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여행 내내 상대방이 왜 웃는지 무슨 얘기들로 웅성거리는지 진땀을 빼다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의지가 안되면 환경을 바꾸라는 '작은 습관 들이기' 책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의 마음은 습관을 집, 사무실, 체육관같이 그 행위가 일어나는 장소들에 연결한다.  각각의 장소는 특정 습관이나 일상 행위들에 연결되고 강화된다.  우리는 책상, 주방 조리대, 침실에 놓인 용품들과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행동한다.  행위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은 습관을 만들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다.



즉 '맥락 묶기'였다.  이미 습관이 정착된 '눈(안경)'과 '손(스마트워치)'라는 습관에 '귀'라는 신체를 묶었더니 이제는 한 번도 놓치는 일이 없이 완벽히 수행하고 있다.  처음 시도할 때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 곳에 모아놨다.  하지만 이제는 깜빡하고 전날 밤, 같은 위치에 벗어 놓지 않았어도 끄떡없다.  갑자기 여행을 떠나도 걱정없다.  만약 코로나 팬더믹이 다시 와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신체라는 맥락묶기에 '입'을 하나 추가하면 되니 잊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침마다 완벽하게 모두 착용을 하면 미션클리어를 한 사람처럼 기분좋게 웃는다.


나는 신체 중에 왼쪽귀가 가장 약했다.  감기가 걸리면 여지없이 왼쪽 중이염으로 고생했다.  당연히 청력도 좋지 않았는데 오십이 되면서 메르에르병까지 진단을 받았다.  귀울림이 어떤 날은 작았고 스트레스와 피로가 심할 때면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직장과 살림이 먼저였기에 치료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재작년 친정엄마 소천 이후 스트레스가 최고치를 달하더니  이명이 있던 왼쪽 귀가 아예 먹통이 돼버렸다.  내 귀는 이명소리가 장악해 버렸다.


시각장애가 세상과 단절이라면, 청각장애는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단절을 의미한다.  눈이 보이고 말을 할 수 있어도 타인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듣지 못한다면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청기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조금 이르다는 것과 신체를 소홀한 벌을 받은 기분일  뿐이다.


참고로 보청기는 안경처럼 착용과 동시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 못한다.  보청기 주파수와 내 이명소리가 겹쳐져서 적응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삼 일정도 훈련했다.  내 말소리, 귓속의 소음, 보청기의 주파수소리가 혼합되어 정신이 없었지만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 테니까.  생각해 보면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를 달래서 해드린 보청기를 불편하시다며 몇 번 끼다가 팽개치신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보청기를 적응했어도 정상 귀처럼 잘 들리지는 않는다.  모르고 왼쪽으로 누우면 귀 안에 보청기 눌림으로 인한 통증으로 벌떡 일어난다.  보청기를 뺄 때 시원한 해방감도 잠시 간지러움이 밀려와 몇 번을 후비게 된다.  보청기를 빼고 나면 시원함이 너무 좋아 다시 끼고 싶지 않을 만큼 내적갈등도 인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애교일 뿐 나는 내일아침에도 어김없이 착용할 것이고 무엇보다 문명의 혜택에 감사한다.  혹여 난청으로 힘드신 분이 있다면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몸이 전하는 신호는 스스로 챙겨야 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평생 대신 아파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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