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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때가 온다

드디어 봄이 왔다


너의 때가 온다


-박노해


너는 작은 솔 씨 하나지만

네 안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들어있다


너는 작은 도토리알이지만

네 안에는 우람찬 참나무가 들어있다


너는 작은 보리 한 줌이지만

네 안에는 푸른 보리밭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너는 지금 모르지만

너의 때가 오고 있다




입춘이라 그런가, 베란다 창밖에서 들어온 바람이 한결 가볍다.  드디어 봄이 온 건가 싶어 창밖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직접 보고 싶어 용산가족공원으로 차를 움직였다.  


봄꽃은 없지만 분명 꽃이 보였다.  분명히 그 기운을 알 수 있었다.  선명한 꽃가지 속에서 우렁차게 물줄기가 흐르며 생장하고 있었다.  겨울은 드디어 힘을 잃었다.  거울못 호수를 도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양지 곁 벤치에서 낮잠에 취해 계셨다.  봄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겨울을 무사히 견뎠다는 보상을 준다.  


우리는 지난해 화려했던 봄길을 그리며 재연하듯 산책했다.  한옥마을 뒷마당처럼 꾸민 정원길에 접어들자 추운 겨울을 곧곧이 견딘 나무들이 변함없이 서있었다.  그래, 이제 곧 봄꽃이 화려하게 나뭇가지를 찢고 나올 테고 우리는 그녀들을 만나러 또 올 것이다.  나무들은 늘 한결같이 보이지만 매해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지난해 전지하지 않은 탱자나무가 무성하게 가시 장벽을 이루며 사납게 무리 지어 있었다.  옛날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울타리로 삼았다고 한다.  얼기설기 대충 보여도 가시가 촘촘해서 탱자나무 울타리 안팎으로 도둑은커녕 족제비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한다.  탱자나무는 열매도 맛없고 나무줄기도 땔감으로 못 쓸 정도로 쓸모없는 나무지만 울타리로 제격이다.  옛날에는 적당한 울타리로써 적당한 사생활 보호도 되면서 이웃 간에 얼굴을 보면서 얘기도 나누고 음식도 건네받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문득 도심의 시멘트벽이 만약 탱자나무 울타리로 대체된다면 좋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탱자나무


우리가 자연에서 쉼을 얻고 또 자주 보고 싶은 이유는 자연이 주는 '신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겨울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봄이 온다는 믿음이다.  


요즘 사는 게 참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라는 삶 속에 화려하고 남들 보기 괜찮은 일들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남들 의식해서 살다가 얻은 만족은 일시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도 아쉬운 인생이다.  지금 힘들다면 좋은 일이 있기 전에 마지막으로 게 고통이 먼저 찾아 힘들다고 생각하시라.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나뭇가지에 작은 새 한 마리가 가지 곁에 붙은 열매를 쪼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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